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언론통제 논란이 끊이지 않으면서 반대급부로 인터넷,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시민활동은 다양하고 활발하게 벌어졌다. 기성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소식을 번역해 알리는 것도 그 중 하나. 번역은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 등 첨예한 국내 이슈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하는 무기이면서 정부의 잘못을 알리는 통로가 되고 있다.
#4대강 반대 운동 돕는 번역연대
독일 뮌헨에 사는 문화재 건물 전문가 임혜지(55·여)씨는 2010년 6월부터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제시하는 독일 사례를 정확히 번역해 알리는 '번역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독일은 물론 한국, 미국 등에 있는 약 10명의 동지들이 그 멤버다.
10대에 독일로 이민 간 임씨가 번역연대 일에 뛰어든 것은 2007년 이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사업 공약 때문. 임씨는 당시 이 대통령이 대운하의 모델로 삼은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 운하가 독일 내에서는 실패 사례로 꼽히는데도 한국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 것에 놀랐다. "독일어와 한국어를 아는 사람으로서 침묵하면 죄를 짓는 것 같아 한국 신문사에 글을 기고하고 독일 전문가를 인터뷰해 번역하는 활동을 했죠."
임씨의 활동을 알게 된 국내 4대강사업 국민소송단이 그에게 독일 하천 보고서 등의 번역을 부탁했고, 임씨는 독일 내 한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번역연대를 꾸린 뒤 지난 2년 동안 통ㆍ번역과 전문가 섭외 등을 통해 4대강 반대 운동을 지원해 왔다.
임씨는 "기성세대가 4대강 사업 등으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미래 세대에 빚을 지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의 토건주의, 핵 철학 등이 후대에 무거운 짐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소식을 10개 외국어로 번역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갈등을 빚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 문제는 트위터를 통해 해외에 현지 소식이 전파되고 있다. 지난달 9일 '제주 강정 구럼비를 지키기 위한 외국어 가능자들의 모임'이 꾸려진 덕분이다.
독일 유학생 예온(@zinlee1)씨가 트위터 모임 사이트인 트윗애드온즈에 모임을 개설했고 약 한 달 반 만에 국내외에서 유학생, 전문번역가 등 94명이 동참했다. 이들은 강정마을 소식을 영어,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등 10개 언어로 하루 세 번 번역해 공식 트위터 계정(@savegangjeong)으로 올리고 있다. 5명의 스태프가 교대로 뉴스를 선정, 요약해 사이트에 올리면 회원들이 함께 번역, 감수하는 식이다. 한달 반 동안 번역한 뉴스 요약문은 100여건. 이중 50개는 3월 말에 유럽연합(EU) 환경위원회, 외국 환경단체 등에 보냈다.
미국 유학생 출신 스태프 샤나(@ShaynaPark)씨는 "평화, 자연환경 보호에 대한 신념, 강정마을 공동체가 깨지는 것에 대한 우려 등 참여 동기도 다양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가 퇴조했다는 문제 의식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외신의 한국 뉴스 번역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융합 저널리즘을 전공하고 있는 유학생 박태인(25)씨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만난 유학생, 번역가 등 11명의 팀원과 함께 외신 기사를 번역해 공개하는 '트위터 외신번역프로젝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주요 외신에 실리는 국내 시사 이슈 분석 기사를 주로 번역한다.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번역한 기사는 약 130건. 최근에는 "한국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워터게이트를 연상시킨다"는 내용의 뉴욕타임스 기사를 번역했다.
박씨가 선정하는 기사는 세계 정세를 이해하고 통찰력을 주는 기사, 한국 언론과 다른 시각으로 한국 상황에 접근하는 기사, 정보통신·소셜미디어와 이로 인해 생기는 프라이버시 문제 등에 대한 기사 등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국 언론 환경에 대해 교수님과 미국 학생들에게 설명하면 그들은 '한국이 중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인식해서 부끄러울 때가 있습니다. 공공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좋은 외신 기사를 통해 한국 상황에 대한 객관적 인식, 국제 정세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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