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저항하다 더 큰 고통을 받은 피해자들은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해줘야 합니다.”
삼청교육대 피해자 모임인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을 이끌고 있는 전영순(73) 대표는 20일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민주화 운동을 억압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폭력에 항거한 경우도 민주화 운동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1997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제5공화국 신군부가 내란죄로 처벌 받았고, 그들이 정권유지 목적으로 삼청교육대를 설치한 만큼 그 피해자들도 민주화 운동 관련자라는 논리다. 그는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등을 상대로 관련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사실 이는 전 대표 자신의 일이기도 하다.
전 대표는 1981년 자신이 계주였던 계 운영과 관련해 동네 경찰의 모략으로 삼청교육대로 끌려가 보름 동안 몸무게 15㎏이 빠질 정도의 고초를 겪은 뒤 청력장애(3급)와 관절염, 한쪽 어깨에 혹을 얻었다.
남편을 6ㆍ25전쟁 때 잃고 홀몸으로 네 자식 키우자면 분노를 억누르고 사는 게 편한 길이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주홍글자가 따로 없었지요. 대통령 취임 기념으로 풀려나 마을로 돌아오니 ‘순화교육 받고 온 여자다’며 수군거리는데 애들을 데리고 살 수가 없었죠.”
이듬해 터전이었던 경북 포항을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던 서울로 도망치듯 올라왔다. 멀리 떠나왔지만 꼬리표는 떨어지지 않았다. 이사 가는 곳마다 동사무소에서 확인 전화가 왔다. “순화교육 이수자죠?” 전 대표는 “자식들 교육도 교육이지만 이걸 먼저 바로잡지 않고선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피해자 명예회복 작업을 본격 시작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들과 이들의 증언을 모아 기록으로 만드는 데 전력투구했지만 세상은 무관심했다. “피해자들조차도 부끄러워서 나서지 않는데 제대로 될 리가 없었지요.”
89년엔 전쟁 미망인으로서 겪은 체험담을 책으로 엮어 삼청교육대의 부당성과 참상을 알렸다. 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관련 법률(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라고 국회를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국회의원들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13대 국회 때부터 줄기차게 요구했지만 2003년 16대 국회 말미에 가서야 법안이 통과돼 피해자들은 겨우 명예를 회복하고 미미하나마 국가보상을 받았어요.”
전 대표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그들의 폭거에 저항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숨지거나 장애를 가졌지만 정부의 민주화 운동 관련자 인정은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끌려간 사람은 3만9,000명에 달하지만 2003년 법 제정 당시 명예회복 신청자는 4,600여명에 그쳤어요. 이런데도 정부는 나머지 사람을 찾거나 명예회복 피해자들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하는데 인색합니다. 얼마나 더 살지 몰라도 피해자들의 온전한 명예회복 작업에 여생을 바칠 겁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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