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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비와 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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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봄비와 낙화

입력
2012.04.2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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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법 많은 봄비가 온다고 한다. 곡우(穀雨)인 어제도 남부 지방에 조금 비가 내렸다. 곡우가 '봄비 내려 곡식들을 기름지게 한다'는 뜻이니, 어제 오늘 내린 비는 반갑고 감사히 맞이할 일이다. 하지만 작은 섭섭함도 있다. 집 앞에 눈이 시리도록 하얗게 핀 벚꽃이 비에 젖어 떨어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 한쪽이 허전해진다. 더욱이 강한 바람마저 분다고 하니, 꽃잎들이 비 내리듯 우수수 떨어질까 걱정이다. 만개한 지 이제 겨우 이틀밖에 안 됐는데.

■ 문득 중국 당나라의 시인 고변(高騈)이 지은 시 '방은자불우(訪隱者不遇ㆍ은자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다)'의 '꽃 떨어지고 물 흐르는 데서 넓은 세상을 알고(落花流水認天台)'라는 구절이 떠오른다. 낙화유수가 늦봄의 정경을 그리듯 표현한 말이지만, 힘과 세력이 약해져 보잘것없이 쇠퇴해간다는 정치적 함의도 담고 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도 같은 뜻인지라 꽃이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권력이나 힘의 절정도 은유하는 모양이다.

■ 마침 선거가 끝난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은 때라 떨어지는 꽃잎들에 몇몇 아름다운 낙선자들의 얼굴이 겹쳐진다. 탄탄하게 다져놓거나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수도권 지역구를 던지고 망국적 지역구도를 깨보겠다며 광주로, 대구로, 부산으로 내려간 새누리당 이정현, 민주통합당 김부겸, 김영춘 후보가 바로 그들이다. 패배 직후 이들 모두 자신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함을 탓해 보는 이들을 울게 했다고 하니, 그 시린 마음은 낙화에 비할 바가 아닌 것 같다.

■ 그들은 울었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다시 시작하겠다는 다짐이 공허하지 않은 것이 그들이 각각 얻은 40% 안팎의 표가 지역구도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 스스로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했고, 지역주민들은 '바보들의 아름다운 도전'이라는 취지의 미안해하는 사연과 격려를 온라인에 올리고 있다. 봄비에 꽃은 떨어지지만 곡식이 윤택해지듯 김부겸, 김영춘, 이정현의 눈물은 한국 정치를 영글게 할 것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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