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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빈곤·소외와의 혈투 쿠바 경제 초석 다진 '경제 관료'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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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 빈곤·소외와의 혈투 쿠바 경제 초석 다진 '경제 관료' 체 게바라

입력
2012.04.2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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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혁명의 경제학/헬렌 야페 지음ㆍ류현 옮김/실천문학사 발행ㆍ616쪽ㆍ2만3000원

1959년 쿠바 혁명이 성공하면서 수도 아바나에 발을 들여놓은 체 게바라는 64년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 게릴라 투쟁에 합류했고, 67년 볼리비아 독재정권에 붙잡혀 사망한다.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은 '전사 그리스도'의 이미지로 그는 이제 사회주의 국가뿐 아니라 자본주의 최첨단의 나라 미국에서도 인기 인물로 소비되고 있다.

이 책은 혁명전사가 아닌 경제관료 체 게바라에 주목한다. 저자인 헬렌 야페 런던유니버시티칼리지 교수는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경제 재건에 동참했던 동료 60명의 인터뷰, 게바라가 산업부 장관 시절 주재한 회의 필기록,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경제관료 체 게바라의 활약을 소개한다.

1898년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지만 미-서전쟁의 결과로 사실상 식민국이 스페인에서 미국으로만 바뀌는 상황에 놓인다. 단일작물(설탕)에 의존하는 국가 경제구조 때문에 수입품의 95% 이상을 미국에 의존해야 했다. 날로 심각해지는 빈곤, 실업, 고용 불안정 등 총체적 경제 문제를 떠안게 된 혁명정부에게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체 게바라는 1959년부터 64년까지 쿠바 혁명정부에서 산업부흥부장, 국립은행 총재, 산업부 장관 등 경제 분야의 중책을 맡아 독특한 사회주의 경제관리시스템을 도입한다. 산업부흥부장으로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를, 국립은행 총재로 화폐 개혁을 단행해 혁명정부 집권 2년 만에 중앙정부가 국가 산업을 관장, 통제하는 '계획경제'로 탈바꿈시킨다.

그의 사회주의 경제관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산업부 장관 시절 실시한 예산재정 시스템과 자율재정 시스템이다. 예산재정시스템은 쿠바 혁명정부 경제의 핵심으로 '모든 작업장의 운영 기금을 중앙집중화해' 정부가 경제계획과 재정, 예산을 관리하고, 생산 관리는 각 사업장에 분산시켜 운영하게 하는 이중적인 계획관리체제다. 집중화와 관료화로 집약되는 소련 경제시스템의 한계를 보완해 생산과 관리에서 노동자들의 참여와 자율을 보장한 것이다. 자율재정시스템은 예산재정시스템의 리스크를 보완하는 모델로 소련에서 도입한 독립채산제와 비슷한 경제체제다. 게바라는 각 생산 단위에 어느 정도 재정 자율성을 부여함으로 생산과 효율성을 높였다.

체 게바라는 마르크스의 <자본> 을 토대로 소비에트 경제체제를 분석, 비판하며 쿠바 경제체제를 구상했다. 그는 소련을 가리켜 "자유시장의 효율성을 얻지 못하면서 이윤만 탐닉"한다고 지적하며, 소련 경제체제의 변질 이유를 "노동자 계급의 집단의식을 기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체 게바라는 인간이 사회 발전의 중심이 되는 경제모델을 모색한다. 동시에 (저자가 책에서 '가치법칙의 작동'이라 일컬은) 노동의 상품화를 경계하며 '의식 혁명'을 강조했다. 예산재정, 자율재정시스템은 이런 철학이 담긴 경제체제다.

"우리는 빈곤과 싸우지만 소외와도 싸운다." 저널리스트 장 다니엘과의 인터뷰에서 남긴 체 게바라의 말은 그의 경제관을 함축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사회적 책임으로서의 노동, 상품 유통, 소비 시스템을 구상하며 쿠바 경제의 초석을 다졌다. 저자는 이 경제 혁명을 빌려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을 위한 경제란 무엇인가.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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