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에고 트릭' 자아는 구름과도 같은 것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에고 트릭' 자아는 구름과도 같은 것

입력
2012.04.20 11:53
0 0

에고 트릭/줄리언 바지니 지음ㆍ강혜정 옮김/미래인 발행ㆍ336쪽ㆍ1만5000원

오랫동안 치매를 앓다 숨진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사람들이 가족에게 "슬프냐"고 묻는다. "아니오. 우린 이미 오래전에 어머니를 잃었으니까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한지 오래된 할머니에게서 가족은 깊은 상실감만 느낀 게 아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이 돼버렸다고 믿고 싶어진다.

한 사람을 그 사람이게 만드는 속성은 무엇일까. '나'라는 것은 실재하는 것일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자아'란 있는 것일까. 있다면 뇌 속 어디에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 것인가.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가 <에고 트릭> 에서 묻고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고정불변의 것으로 생각하는 '자아'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책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저자는 '자아'가 변하지 않는 고유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나를 나로 만드는 변함없는 핵심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하며, 육체며 경험이며 기억 등 그것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의 묶음에 가깝다는 '묶음이론'을 지지한다. 자아는 혼란스러운 단편적 경험들과 기억들을 가지고, 중앙통제소가 없는 뇌에서 하나로 통합된 강력한 의식이다. 다만 끈끈한 심리적 연결과 지속성 때문에 단단한 실체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아가 환상인 것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구름이 멀리서 보면 경계가 선명한 하나의 물체 같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경계가 흐려지고 작은 물방울의 집합체임을 알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알고 보니 솜뭉치가 아니어서 구름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없는 것처럼, 단단하고 영원하지 않은 '묶음'이라고 자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적절한 거리에서 제대로 보면 자아는 분명 실재하지만, 우리들 대부분이 상상하는 그런 모습은 아'닐 뿐이다.

이 책의 매력은 자아의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인지과학의 석학인 대니얼 데닛, 신학자 리처드 스윈번, 뇌과학자 수전 그린필드, <밈> 의 저자인 심리학자 수전 블랙모어, 무신론 불교철학자 스티븐 배철러 등 여러 전문가들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이론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학자들이 이론으로만 말하는 많은 문제를 실제 삶에서 겪고 있는 사람들도 찾아갔다. 정체성에서 육체가 차지하는 의미와 중요성을 알기 위해 성전환자들을 만났고, 자아라는 관념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장치의 하나인 기억의 상실을 겪고 있는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다중인격장애를 가진 남자, 뇌종양으로 자아의식을 잃은 여자, 55년 동안 어떤 새로운 기억도 저장하지 못한 남자도 등장한다.

치매환자 가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자아 혼란을 경험하는 이 같은 이들에게 '자아란 무엇인가'는 단지 철학적인 주제일 뿐 아니라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정신까지 개조할 수 있을 미래에는 아마도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자아의 본질을 해명해나가는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아를 끊임없이 변하는 비영구적인 과정으로 본다는 것은 죽음이 그것의 일부임을 인식한다는 의미'이다. '내가 유한한 존재이며, 나의 속성이 거침없이 종말을 향해 달리는 무엇이라는 개념을 배제하고는 나라는 존재를 이해할 수 없'으며 '온전하고 충실한 삶이란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고 주어진 모든 순간을 기회로, 아주 귀중한 어떤 것으로,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어떤 것으로 받아들이는 삶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