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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성실히 응답했더니 '일진학교' 낙인… 은폐 부추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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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성실히 응답했더니 '일진학교' 낙인… 은폐 부추길 수도

입력
2012.04.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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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가 20일 홈페이지에 전국 1만1,363개 초중고의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학교별로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숨김없이 공개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학교 실명 및 순위를 공개함으로써 '낙인효과'를 유발하고 이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다. 교육계와 학교폭력 전문가들은 ▦학교들이 설문조사에 개입해 실상을 은폐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가해자 색출과 퇴학 등 단기처방을 조장하며 ▦자료에 객관성이 결여돼 혼란을 가중시킨다고 지적한다.

학교에 책임과 부담 떠넘겨

19일 결과를 전해들은 학교들은 한결같이 "너무 한다"는 반응이었다. '일진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약 50%(560여명)에 달한 전남 G중학교 교감은 "학급당 인원수가 38명에 달할 정도로 과밀학급 문제가 심각해 교사들이 학생지도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고, 배움터지킴이(퇴직경찰을 활용한 경비 보조)는 예산이 나오지 않아 실시도 못한다. 2학년 복수담임 역시 교사가 부족해 부장교사들로 채웠는데, 설문결과가 나빠 학교가 책임지라고 해도 손 쓸 방도가 없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학교폭력 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는 큰 원칙에 공감한다"면서도 "오히려 학교현장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결국 안 좋은 실태가 밝혀진 학교들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면서 각 학교들이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압박만 높아진다는 것이다. 손충모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정부가 결과를 발표하며 학교를 압박하면 할 도리를 다한 모양새를 갖출 수 있지만, 결국 정부는 손 놓고 보고를 기다리고, 각 학교는 '일진학교'오명을 씻기 위해 온갖 행정적ㆍ대외적 제스처를 취하느라 학생들을 상담할 시간을 더 뺏기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실한 답변만 손해" 은폐 여지도

더 큰 문제는 실명 공개 때문에 학교폭력 해결이 더 어려워지는 역효과가 예상된다는 것. 우선 '성실히 보고하거나, 학생들 더 민감하게 지도한 학교일수록 오명을 썼다'는 불평이 터져 나온다. 다음 조사부터는 오히려 조사에서 실상을 왜곡하거나 은폐하려는 학교의 개입이 나올 여지가 적지 않다.

설문 회수율이 81%에 달하고 일진 응답 비율도 55%로 나타난 강원 N중학교 교감은 "평소 아주 사소한 괴롭힘이 발생해도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고 학생들에게 '이런 것도 폭력이다'라고 지도해왔는데, 그 결과로 학생들이 일진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인 결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감은 "평소에도 학교폭력자치위를 많이 연 학교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대처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야 하는데 거꾸로 '폭력 많은 학교'로 몰아 문제가 많았다. 이러다 '은폐가 능사'가 되겠다"고 지적했다.

'일진 학교'라는 낙인이 두려운 학교들은 당장 처벌위주의 단기처방에 매몰되기 십상이다. 이유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학교는 단기간에 '일진을 없앴다'는 사실을 내보이기 위해 가해학생을 색출하고 전학시키고 퇴학시키는 등 손쉬운 단기 처방을 추진하기 마련"이라며 "장기에 걸친 관계의 치유와 회복은커녕 인권을 침해하는 비교육적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회수율이 366%? 신뢰도 의문

조사 결과를 공개할 만큼 객관적이었느냐는 지적도 따른다. 전체 조사대상 559만명 중 25%(139만명)만 조사에 참여했으며, 1만1,363개 학교 중 설문지 회수율이 10% 미만인 학교도 1,906개교나 된다. 설문 회수율은 학교마다 들쑥날쑥이어서 일진, 폭력경험 응답률이 가장 높은 학교들은 설문 참가자 수가 수십명이 고작이었다. ,부실한 관리로 회수율이 100%를 넘긴 학교도 200여곳이나 됐다. 경북 D초교의 경우 전교 재적인원이 3명인데 설문지는 11장이 회수돼 회수율이 366%로 기록됐고, 전남 J초는 전교생이 54명인데 설문지는 104장이 돌아왔다. 교과부 관계자는 "전학 등으로 설문당시와 통계산출 당시 재적인원이 달라졌고, 일부 학교에 정원보다 많은 설문지가 배포됐다"고 해명했다.

김승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클리닉센터 팀장은 "조사가 지나치게 약식으로 진행돼 실제로 일진 몇 명이 어느 정도 활동하는지 등 정작 절실한 정보를 묻지 않고 있다. 자살방지를 위해 꼭 알아야 할 '고통이 얼마나 지속적으로 심각하게 가해졌는지' 등도 전혀 파악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예산을 25억이나 들이고도 겨우 부정확한 피해율, 일진비율만 추산해 낸 것이다.

한만중 행복세상을여는교육연대 상임집행위원장은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내보이려고 자료를 공개해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김혜영기자 shi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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