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끝나면 뭉쳐 다니는 일진들 많아요. 한 반에 2~3명씩은 꼭 있어요. 그런데 선생님들은 이를 외면하려 하고,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아요."(서울 K중 2학년 남학생)
교육과학기술부가 공개한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 일진이 있다는 인식과 폭력피해 경험이 높은 것으로 밝혀진 학교들을 19일 한국일보 취재진이 직접 찾아가 봤다. 학교의 현실은 수치가 말하는 것 이상이었다.
설문 참여 학생의 45.3%가 "학교 내 일진이 있다"고 응답했고, 학생들의 폭력 피해 경험 비율이 15.4%로 '고위험군'에 속하는 서울 구로구 K중학교. 이 학교 2학년 여학생 A양은 "전학 오는 학생이 있으면 일진들이 먼저 말 건다. 그렇게 해서 같이 어울리고, 아님 상대 안 한다. 여학생 중에도 일진들 많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폭력을 주고받는 현실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학교의 폭력 대책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3학년 C군은 "폭력이 발생해도 선생님에게 잘 알리지 않는다. 조사한다고 계속 불려 다니고, 귀찮아질 뿐이다. 학교 폭력 예방 프로그램 그런 거는 하지 않는다. 시간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2학년 D군은 "가끔 선생님이 조례 종례 때 학교 폭력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게 먹힐 리가 있겠나. 폭력은 일부 '찐따'들이 당하지 대부분 아이들이랑 상관없다. 보복 두려워 신고도 안 한다"고 했다.
'일진 인식률'이 76.1%로 조사된 서울 강북구의 K중 3학년 F군은 "노는 아이들이 책상을 치우고, 특정 2명의 학생을 지목해 싸우라고 지시한 일이 있었다.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나중엔 피터질 때까지 싸우게 된다. 2년 동안 학교 폭력은 일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교사들의 인식은 현실과 거리가 멀었다. 구로구 K중 교장은 "우리 학교에 일진과 학교 폭력이 많다는 건 통계를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학교 생활부장 이모 교사는 "우리 학교는 하루 지각생도 많아야 2명일 정도로 엄격하게 생활지도를 하고 있다. 우리는 학교폭력이 없어서 자신 있게 학생들의 설문참여를 높였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황당하다"고 말했다.
"일진이 있다"는 응답자가 424명이나 되는 서울 강남구의 K중학교도 사정은 비슷했다. 3학년 E군은 "1,2학년 때 선배들에게 많이 맞았다. 학교 뒤 놀이터에서 돈을 뺏는 선배도 있었고, 후배들 모아두고 돈 가져오라고 시키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학교 교사는 "학생들 간 학교폭력 같은 게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주변에 위해시설도 없고, 조용한 곳으로 서로 우리 학교에 오려고 한다. 학교 폭력이 전혀 없진 않지만 많다고 나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20일 0시 교과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 학교별 폭력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300명 이상의 학생이 "학교 내 일진이 있다"고 답한 학교가 전국적으로 31곳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초등학교 5곳을 제외한 26곳이 모두 중학교로 중학교의 일진 활동이 가장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100명이 넘는 학교도 93개나 됐고, 이 가운데 고교 1곳을 제외하면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각각 46개로 학교폭력이 초ㆍ중학교에 집중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 자치구별 '폭력 응답률'은 노원구가 13.66%로 가장 높았고, 송파구(12.90%), 강남구(11.61%), 강서구(11.28%)가 10% 이상을 기록했다. '일진 인식률'도 노원구(25.08%), 송파구(23.92%), 강서구(20.77%)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이른바 '강남3구'로 불리는 강남구와 송파구의 학교폭력 피해응답률이 높은 것과 관련해 한 교육관계자는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 등으로 인해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높아 폭력 발생 비율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manbok@hk.co.kr
이동현기자 nani@hk.co.kr
박철현기자 karam@hk.co.kr
채희선기자 hsch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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