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19일 삼성그룹 여성 승진자 9명과 점심식사를 했다. 지난 겨울 정기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한 임원 3명을 포함해 부장 2명, 차장 3명, 그리고 과장 1명도 있었다.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도 배석했다.
특별한 주제는 없었다. 회사 얘기부터, 회사와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데 따른 고충, 개인 생활까지 1시간40분 동안 총수와 여성직원과의 대화는 격의 없이 이뤄졌다. 이 회장은 "여성에게는 남자가 갖지 못하는 숨겨진 힘이 있다. 아이를 10달 동안 키워서 낳고 고통을 거뜬히 이겨내는, 부성애와는 다른 모성애"라면서 "지금 30% 정도인 여성인력 채용 비율을 더 높여 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10일 이 회장은 지역전문가 과정을 마친 임직원 7명과 오찬을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지역전문가를 왜 도입하게 되었는지 상세히 소개하며, 이 제도가 오늘날 글로벌 삼성의 근간이 됐음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1987년 그룹 회장이 되자마자 추진한 것이 지역전문가와 탁아소 제도였는데 당시에는 반대도 있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회사가 답답했다" "1993년 미국 매장에서 삼성제품이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쌓여 있는 것을 보고 그 제품과 일본 제품을 사오라고 했다. 두 제품을 뜯어보니 우리 제품의 부품수가 20~25% 더 많았다. 기가 막혔지만 그게 당시 우리 모습이었다"고 회상에 잠기기도 했다.
이 회장의 '스킨십 경영' '오찬경영'퍼레이드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과거 한남동 자택(승지원)에서 사장단으로부터 보고받던 시절, 삼성그룹 임직원들은 이 회장을 볼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작년 4월부터 서초동 사옥 출근을 시작한 이후 사장단은 말할 것도 없고 계열사 임원, 중간간부, 평직원들까지 접촉빈도를 늘려가고 있다.
삼성에 따르면 이 회장이 작년 4월 이후 사옥으로 출근을 한 횟수는 출장과 여름휴가, 겨울휴양 기간 등을 제외하면 총 52회. 이 회장은 52회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사장단, 임원, 사원 등 다양한 직원들과 그룹을 이뤄 점심식사를 했다.
사장단의 경우 중공업ㆍ건설계열이나 전자ㆍ부품계열 등 소그룹 별로 만나 점심을 함께 하며 보고를 받는다. 특히 눈길 끄는 건 일반 임직원과의 오찬. 여성임직원, 지역전문가 출신 외에 사업장을 직접 찾아 평직원들과도 자주 어울린다. 작년 7월에는 이 회장이 경기 수원사업장을 찾아 사원대표들과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했다.
이 회장이 일반 임직원들과 오찬 등을 통해 스킨십을 늘리는 건, 회사 구성원들과의 단절감을 복원하기 위한 것. 사실 오랜 자택경영을 끝내고 정기 출근을 시작한 이후 이 회장은 그룹 전반에 걸쳐 기강해이, 소통부재, 투명성 저하, 회사에 대한 충성도 위축 등 심각한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삼성특유의 조직문화를 되살리기 위해선, 본인이 사장단부터 평직원까지 직접 만나 의견을 듣고 전달할 필요성을 느꼈을 공산이 크다. 또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서도 내부기강과 로열티를 다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평소 7시30분이던 출근 시간이 1시간 가량 앞당겨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삼성 관계자는 "임직원들과 대화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연진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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