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들의 새 출발을 돕는 법조인이 되고 싶습니다.”
지체장애 1급으로 1월 사법연수원(41기)을 수료한 이성준(36)씨는 7월부터 서울역 맞은편에 최근 문을 연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으로 출근한다. 중재원은 몇 년씩 걸리는 의료분쟁을 90~120일 사이에 조정과 중재로 해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환자와 의료인 사이의 분쟁 조정이 이씨 업무다.
인상 좋기로 소문난 그지만 대학 4학년이던 1999년 낙상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면서 한때 세상과 담을 쌓기도 했다. 그도 세상도 서로를 찾지 않았다. 거듭된 수술로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욕창까지 올랐다. 이씨는 “그렇게 2년 반을 살았는데도 장애인이 됐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며 “하지만 문득 ‘이렇게 살다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자신의 장애를 인정한 그는 인터넷 서점에서 민법책을 주문하는 것으로 사실상의 ‘새 삶’을 시작했다. “몸이 아닌 머리를 쓰는 일이라면 한번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2003년 사법시험에 처음 응시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지만, 남은 반이 만만치 않았다. 사시를 치르기 위해 개별적으로 법무부에 전화를 걸어 ‘나 이런 사람이다’라고 알려야 했다. 고사장 이동을 위해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4층 고사장에 배정을 받아 시험장 아르바이트생들이 이씨를 들어 올려 입실한 적도 있다.
머리로 하는 일이라면 다 될 것 같았지만 시험도 생각보다 어려웠다. 도전 3번째 만에 1차 관문을 통과해 최종 합격을 넘보기도 했지만 이듬해부턴 연거푸 1차에서 떨어졌다. 달리 대안이 있지도 않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달려든 2009년 시험에서야 최종 합격했다. 7번째 도전이었다. “합격할 즈음되니 장애인 수험생을 위해 별도의 시험 공간이 생기더군요.”
점점 나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장애인들에 대한 우리사회의 배려는 여전히 아쉽다는 판단이다. 이씨는 “지은 지 오래된 법원 청사를 보면 ‘내가 변호사로서 과연 활동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들 정도로 열악하다”고 했다. 또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 세운 차에서 멀쩡한 사람이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며 “나 같은 경우 차를 주차하고 휠체어를 꺼내 옆에 앉을 공간이 필요한데, 변론하러 법원에 갔다가 차에서 내리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을 종종 상상한다”고 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첫 직장. 설레기도 할 것이다.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찾는 분들은 가족이 치료과정에서 사망하거나 큰 장애를 얻은 경우가 많지 않겠어요? 병원과 싸우느라 더 힘들어 할 분들에게 힘이 되도록 할 겁니다.”
정민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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