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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사람을 살린' 곽노현 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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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사람을 살린' 곽노현 교육감

입력
2012.04.1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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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어린 놈이 정치를?> 이라는 책을 냈다. 그의 꿈은 10년쯤 후 사립 과학고등학교 이사장이 되는 것이라는데, 나중에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교육감은 해 보고 싶다고 썼다. 그는 교육 봉사단체 '배나사'(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와 교육 벤처사업을 운영하면서 뭔가 근본적인 게 바뀌지 않으면 힘들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교육감은 당에 소속되지 않아도 되고 정치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을 수 있는 점도 매력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교육감은 아주 매력적인 자리이다. 황폐한 초ㆍ중등 교육 현장을 보며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에 실망한 사람일수록 제대로 된 교육을 실현하려 애쓴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도 교육개혁의 큰 포부를 안고 서울의 초ㆍ중등 교육을 총괄하는 자리를 쟁취한 사람이다. 전임 공정택 교육감의 비리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반감과, 교육 보수세력 후보들의 분열에 힘입어 그는 당선될 수 있었다.

많은 우려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신을 밀고 나갔고, 실제로 교육현장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후보 매수사건 이전에 만나본 그는 논리적인 데다 교육개혁을 위한 전략도 잘 갖춘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 사건이 드러난 지난해 8월 이후의 그는 계속 실망만 안겨 주고 있다. 2심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이 선고돼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자 다음날인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법원과 검찰을 비판하며 사퇴를 거부했다. 법학자(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인 그가 현행 법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것은 '민주적 법학자, 양심적 교육자, 개혁적 교육행정가'라는 우호적 평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경쟁 후보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을 대신 전해준 곽 교육감의 친구 강경선 방송통신대 교수는 한 술 더 떴다. 그는 "자살 가능성이 있는 박 교수를 살린 것을 선거법 위반이라고 한다"며 법원의 수준이 낮다고 비판했다. 고등법원으로서의 높은 품격에 값하지 못한 몰지성적 판결이라는 것이다. 곽 교육감이 사람을 살린 사실은 도덕과 종교의 영역이지 법의 영역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2억 원을 건넨 행위를 후보 매수라고 본 법원의 판단을 수긍ㆍ지지하고 있다. 오히려, 돈을 준 사람보다 받은 사람이 더 엄한 처벌을 받아 징역형을 사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인들의 평범한 상식으로는 "1ㆍ2심 재판부 모두 (내가) 어떤 부정한 사전 합의와 관계없음을 인정했다"는 곽 교육감의 말이 궤변으로 들릴 뿐이다. 구속상태에서 풀려난 후 불공정하고 편파적인 인사로 물의를 빚고 감사원 감사를 부른 것도 곽 교육감 스스로 정당성을 훼손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곽 교육감이 헌법에 보장된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대법 판결 때까지 정당한 방어권을 행사하는 것은 그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7월로 예상되는 판결에서 그가 무죄로 확정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그리고 지난해 구속됐을 때도 그랬지만 지금 그의 거취에 대해 여론조사를 한다면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을 게 분명하다.

곽 교육감이 자리에 머물러 있을수록 그를 앞세운, 또는 그를 들러리 세운진영 간의 대립과 싸움이 커지고 교육계의 분열이 증대될 뿐이다. 그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신문들은 사퇴를 거부한 그의 기자회견을 놀랍게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문성근 민주통합당 대표 대행은 "곽 교육감의 인격과 진정성을 믿는다"고 말했지만, 그의 인격과 진정성을 믿는 사람들과 그 반대인 사람들의 싸움으로 교육현장은 계속 혼란스러울 것이다.

곽 교육감은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떠올리며 이 자리에 섰다"고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이들의 눈망울은 지금 맑지 않다. 폭력과 왕따로 학교현장은 엉망이다. 자살순서 매뉴얼을 노트에 써 넣고 그대로 실행한 여중생까지 있다.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이제 곽 교육감은 그만 물러나는 게 좋겠다. 돈을 주어 사람을 살렸다지만, 지금부터 진짜 살려야 할 것은 바로 그 자신이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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