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지망생 노라(난다 모함메드 분)는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불법구금 됐던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그런데 노라의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에겐 눈에 띄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
17일부터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의 한 장면이다. 연극은 카메라를 피하는 등장인물들의 태도를 통해 정부군의 불법 체포, 구금, 학대 등으로 무의식적인 공포감 속에 살고 있는 시리아인들의 ‘현재’를 보여준다. 쉽게 접하기 힘든 시리아 연극인들의 작품이다. 시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란 배우와 스태프들이 하루하루가 전쟁과 다름없는 시리아의 ‘오늘’을 먼 이국의 무대에 재현했다. 두산아트센터가 시리아 연극인들에게 국내 공연을 먼저 제안해 성사됐다. 연극은 29일까지 계속된다.
공연에 앞서 17일 있었던 프레스 콜에 참석한 배우들과 스태프들은 “시리아 상황은 지금 각국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입을 모았다. 연출을 맡은 오마르 아부 사다(35)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민주주의 같은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자 혁명을 멈추지 않는 시민들이 놀랍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품으로 단순히 시리아의 정치적 상황만이 아니라 역사적인 변화의 순간, 혁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세대를 조명하고 싶었다. 혁명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드러내려고 했다”고도 했다.
1년을 훨씬 넘긴 시리아의 반정부 시위로 사망한 군인과 민간인의 숫자는 4월 현재 1만여 명으로 파악된다. 구금된 사람은 수천 명이고, 터키로, 요르단으로, 레바논으로 떠난 난민도 20만 명을 넘는다. 최근 유엔 감시단이 파견됐지만 석유라는 매력적인 자원이 없는데다 현 정권 이후 어떤 성향의 정권이 들어올지도 불투명해 국제 사회의 개입은 소극적인 수준이다.
‘카메라를 봐주시겠습니까’는 생지옥이나 마찬가지인 시리아를 정직하게 전달한다. 작가인 모함메드 알 아타르는 생생한 극본을 위해 불법구금을 당한 사람들을 직접 만났다. 22일 간 독방에 구금됐을 때, 무차별 폭행당할 때, 15일 만에 빛을 봤을 때를 담담히 회고하는 연극 속 등장인물들의 대사는 모두 실제 불법구금 됐던 이들의 경험담이다. 오마르 아부 사다는 “누구인지 밝힐 순 없지만 우리 스태프 가운데 한 명도 시위에 참여했다가 40일 가량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다”고 전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국까지 날아 온 이들의 바람은 ‘무사 귀국’이다. 파라흐 역을 맡은 루나 아보 데르하민은 “시리아는 안보를 이유로 연극 같은 예술 활동이 극도로 통제되고 있기 때문에 연습은 숨어서 하고 출국 이유도 철저히 비밀로 했다”며 “운이 나쁘면 시리아로 돌아갔을 때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거나 수감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가싼 역할의 자말 쇼케르는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 않는다. 자유롭게 우리의 혁명을 표현할 수 있다면 유럽이든 한국이든 가리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리아 상황이 더욱 심각해짐에 따라 당초 5월 중순까지 예정 됐던 공연 일정을 단축해 29일 마무리 한 뒤 이달 말에 서둘러 돌아간다. 7월 중에는 레바논의 수도인 베이루트 공연이 잡혀 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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