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라는 패찰이 붙어 있을지라도 나는 옛날의 그곳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고 느꼈다. 오늘도 나는 새로운 시간의 레일을 따라 새로운 공간에 처음 온 것이었다. 새로 출발할."(18쪽)
지난해 11월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홀로 낙향한 소설가 박범신(66)씨. 둘레가 30㎞에 이른다는 탑정호를 마주한 조정리(里) 새 집과, 아내가 지키고 있는 서울 평창동 옛집을 오가며 지난 겨울을 보낸 그가 그동안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모아 산문집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은행나무 발행)를 펴냈다. 부제는 '논산일기 2011 겨울'. 나의>
19일 서울 종로의 한 음식점에서 기자들을 만난 박씨는 "충동으로 사는 인간인지라 어떤 내적 필연성 없이 논산으로 갔는데, 일기를 책으로 묶고 보니 스스로 '지금 왜 논산에 왔나' '나의 문학은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환갑을 넘어서도 <촐라체> <고산자> <은교> 등 '갈망 3부작'과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등의 장편을 차례로 쏟아냈던 그는 지난해부터 휴지기를 맞은 상태다. "1년 넘게 소설을 못쓰고 있다. 절필(1993~1996) 이후 내 문학을 추동했던 초월에 대한 욕망이 '말굽'을 쓴 뒤로 좌초했다. 그 주제에 대해선 더 이상 얘기할 게 없더라. 때마침 교수직이 끝났고(지난해 8월 명지대 정년퇴직)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등 맡던 일을 모두 내려놨다. 그때 논산이 다가왔다. 새로운 공간에 가면 소설의 새 길이 보일까 싶었는데 그래도 갑갑했다. 지난 가을 겨울을 헤매는 기록이 이번 책이다." 나의> 비즈니스> 은교> 고산자> 촐라체>
"세 번 중 두 번꼴로 취한 채로" "손가락 하나로 그 작은 아이폰 자판을 두드리며" 썼다는 이번 일기에는 또 한 번의 문학적 갱신을 희구하는,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논산 시대"를 활짝 열어젖히고 싶어하는 노작가의 모색과 분투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가는 뱀처럼, 들끓는 세상의 밑바닥에 배를 대고 가야 하는 사람이다. 안락은 작가의 몫이 아니다."(62쪽)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문학, 목매달아 죽어도 좋은 나무"라는 널리 회자되는 당선소감을 밝혔던 박씨는 "늙은 청년"을 자처하며 초심을 거듭 강조한다. "(나는) '나는 살았다, 썼다, 사랑했다'는 스탕달의 묘비명을 전용원고지에 늘 인쇄해서 사용한 사람이다."(101쪽) 소설가 남편의 충동과 방랑벽을 묵묵히 인내하며 해로해온 부인에 대한 애틋함을 표현하는 데에도 일기의 상당 부분이 할애됐다.
고향 논산의 역사와 문화, 명승지와 특산품, 넉넉한 인심을 소재로 쓴 글도 다수다. 특히 보수파 송시열과 진보파 윤휴가 충돌하던 조선 후기에 중도 노선을 견지하며 논산에 은둔했던 대학자 윤증의 삶에 깊은 관심을 피력한다. 박씨의 차기작을 짐작해볼 수 있는 단서로도 읽히는데, 작가 본인의 설명은 이렇다. "조정리 집에 처음 갔을 때 헛것들이 막 보였다. 대화도 나눴다. 생애 최초로 귀신들과 논 셈이다. 금강 문화권은 패배의 역사로 점철된 곳이다. 계백, 견훤 등등. 그러니 고향에 가지 못하고 죽은 이들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 한맺힌 영혼들이 나를 통해 부활하고 싶은 모양이다. 앞으로 뭘 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내게 뭔가를 강력하게 시사해주고 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최다인 인턴기자(숙명여대 정보방송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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