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지방의 낮 기온이 20도 안팎을 오르내리자 꽃샘추위에 움츠려 있던 봄 꽃들이 앞 다퉈 피고 있다. 늑장 부리던 벚꽃은 이번주 들어 폭죽 터지듯 만개했다. 벚꽃보다는 화려하지 않지만 연분홍 빛이 도는 살구꽃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한다. 매화 개나리 목련 같은 이른 봄철 꽃들이 아직 볼 만한데 라일락, 철쭉 등도 서둘러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낮 동안에는 자태를 뽐내는 각종 꽃들로 눈이 즐겁고 밤에는 매화 향과 라일락 향을 함께 맡는 코가 호사를 누린다.
■ 꽃들이 차례를 무시하고 한꺼번에 몰려 피니 어느 꽃에 먼저 눈길을 주어야 할지 갈등이 생긴다. 한 상 가득 차린 밥상 앞에서 어느 반찬에 먼저 젓가락 가져갈까 하는 행복한 고민과 같다. 낮은 담장이나 울타리를 따라 심는 조팝나무 흰 꽃도 요즘 우리의 눈길을 다툰다. 시골 밭둑이나 야산 가장자리에도 지금 흰구름 피어나듯 무성하게 피는 꽃이다. 알싸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좋아서 어린 시절 꺾어다 병에 꽂아두곤 했던 기억이 난다.
■ 조팝이라는 이름은 다닥다닥 붙은 꽃송이가 조밥 모양을 닮아서 붙여졌다고 한다. 5월에 흰 쌀밥 모양으로 꽃이 피는 이팝나무와 함께 그 옛날 보릿고개를 넘기기 힘들었던 조상들의 고통을 간직한 이름이다. 조팝나무는 우리 인류에게 매우 고마운 식물이기도 하다. 현재 전 세계 인구가 하루에 1억 알 넘게 먹는다는 아스피린이 조팝나무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처음 만들어졌다.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사가 1899년 조팝나무 추출물질을 정제해 상품화한 게 바로 아스피린이다.
■ 아스피린이라는 명칭도 아스피린의 화학명 아세틸살리실산의 머리글자와 조팝나무의 학명 스파이리어가 결합돼 탄생했다. 오늘날 아스피린은 단순한 진통해열제를 넘어 심장병, 뇌졸중, 고혈압은 물론 식도암 대장암 등의 예방 및 치료제로 쓰인다. 일부 부작용이 없지 않지만 해마다 새로운 효능이 추가되고 있어 말 그대로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만하다. 이 봄 눈길을 붙잡는 꽃들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얽힌 사연과 스토리를 알고 보면 더욱 즐겁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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