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선배는 우울증 저 후배는 조울증, 겉으로는 머리 아프다면서 속으로는 마음 아픈 이들이 꽤 많은 듯하다. 나도 봄볕 아래 그늘진 그네들이 자주 되어보곤 하는 요즘이다. 배를 곯는 것도 아니고 실연한 것도 아닌데 대체 왜 똥 씹은 얼굴이니?
감춘다고 하는데도 억지웃음 뒤로 힐끗힐끗 들키곤 하는 내 오만상, 특히나 예민한 촉의 소유자인 글쟁이들에게 속내의 민낯을 들킬 때면 여지없이 이렇게 되물어버리는 나다. 무슨 힘으로 한평생을 살아갈까.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군가는 손가락질을 하는 이 근원적인 물음을 화두랍시고 꽃잎이 눈꽃처럼 날리는 정동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이 많은 사람 중에 내가 아는 사람 혹여 만날까, 은근 바바리 깃 세워가며 한껏 똥 폼 잡고 관조하는 자세로다가 시인 흉내였는데 야! 하고 내 등을 치는 선배. 우리가 몇 년 만이더라, 로 시작된 대화가 이런저런 근황 토크로 이어지다 더는 할 말이 없다 싶을 무렵 무심코 내가 던진 말이라니.
왜 이렇게 폭삭 늙었어요? 머리카락 다 잡아 잡수셨네. 웃자고 한 얘기였는데 몇 년 전 대장암 수술을 크게 받아 그렇다고 무심히 답해버리는 선배라니. 커피 한 잔 나눌 새도 없이 그는 손 흔들며 가던 길로 사라졌다.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어머니 간병인으로 나섰다나. 그럼에도 환히 웃으며 남긴 명언이라니. 이 환장할 봄 날씨 우리 엄마가 젤로 좋아하셨는데. 부디 민정아, 효도해라!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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