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답이 없다 하더라도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을 밟아야 하는 영역이 있다. 바로 정치다. 정답보다는 과정이, 효율성보다는 정당성이 더 중시되는 게 정치다. 치열한 토론과 경쟁을 통해 답을 구하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소통과 합일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게 정치의 본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새누리당 일각에서 제기되는 박근혜 대선후보 추대론은 정치의 본질을 망각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현 시점에서 대선후보를 꼽으라면,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압도적이다. 정몽준 의원이나 김문수 경기지사가 거론되지만, 총선 승리를 이끌어낸 박 위원장 앞에서는 작아 보인다. 그래서 이상돈 비대위원이 엊그제 '경선 무용론'을 주장했을 것이다. 상당수 의원들도 경선 과정에서 박 위원장의 약점이 노출돼 흠집이 나거나 내부 갈등이 증폭될 것을 우려, 내심 추대론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편한 게 좋은 것은 아니다. 추대론은 소탐대실의 전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오만하고 권위적이고 퇴행적으로 보인다. 제수 성추행 의혹의 김형태, 논문 표절 논란의 문대성 당선자에 대해 한 발 늦은 대응을 하자 "총선에서 이겼다고 벌써 목에 힘이 들어갔느냐"는 비판이 나오는 세상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엄연히 경선 절차가 있고 도전자들이 존재하는데도 "해보나마나 결과는 뻔하다"는 식의 논리는 과정을 무시하는 독선에 다름 아니다. 더욱이 박 위원장은 산업화를 이뤘지만 장기집권과 권위주의 통치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다. 굳이 '윗사람으로 모셔 받들다'는 의미의 추대를 택해서 유신시대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울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마찬가지로 새누리당에 퍼져 있는 '박근혜 대세론'도 독이 될 수 있다. 2008년 대세론을 구가하던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패하고, 1992년 미국 대선에서 1차 이라크전쟁의 승리로 90% 지지를 누리던 조지 부시 대통령이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굴복하기도 했다. 추대론이나 대세론은 박 위원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충분히 보고, 검증하고 싶은 국민의 권리도 박탈하는 잘못된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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