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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비경 가득 태국 끄라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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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비경 가득 태국 끄라비

입력
2012.04.1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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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벽·해안·호수·정글 '4중주'… 쉼표 만끽, 느낌표 만발

야반도주하듯 한밤중에 짐을 쌌다. 여행 기간 중 가장 행복할 때는 여행 가방에 짐을 쌀 때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바쁜 일상에 쫓기다 출발 전날 밤에야 후다닥 짐을 쌀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치도곤이라도 맞은 것처럼 피로에 절어 살던 생활 속에 던져진 ‘끄라비’라는 지명은 생소하다 못해 제대로 발음하기도 어색했다.

눈 앞에 석회암 절벽들이 맥락 없이 우뚝 솟아 있었다. 물결치듯 이어지는 산맥에 익숙한 눈은 칼로 절단한 듯 예측불허로 끊어져 있는 끄라비의 석회암 산에 적응을 못했다. 알고 보니 끄라비는 아찔한 높이의 석회암 절벽에서의 암벽 등반으로 유명하단다. 매년 4월이면 국제적인 암벽등반대회가 열리는 끄라비의 모습은 여행사 광고에서 접하는 ‘석양 지는 해변가를 걷는 신혼부부의 뒷모습’같은 동남아 휴양지의 대표적인 이미지와는 사뭇 달랐다.

끄라비의 섬 투어에서는 아름다운 해변과 시선을 압도하는 석회암 절벽 섬들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끄라비의 대표적인 해변인 아오낭 해변에서도 감상할 수 있는 100여 개의 군도 중 11개의 섬만이 고운 모래로 해변을 이룬다. 옛날부터 끄라비의 어부들이 타던 롱테일 보트나 시원하게 바다를 가르는 스피드 보트로 서너 개의 섬을 돌아보며 해변에서 수영하고 느긋한 점심을 먹는 것이 섬 투어의 주요 일정이다. 스피드 보트를 타고 30분 정도 달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면 검정과 갈색 물감으로 채색한 것 같은 석회암 절벽 섬들을 보며 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끄라비는 1만 1,000년 전 빙하기 끝자락에 바다의 수위가 급격히 떨어지면서 독특한 지형이 형성됐고 바다의 수위가 오르내리길 반복하면서 현재의 물결치는 듯한 석회암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꼬 홍의 해변에 섰다. 하얀 밀가루 밭에 발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라임색 해변에서 번갈아 발가락을 간지럽히는 고운 모래와 바닷물을 느끼고 서 있자니 도시에서부터 어깨에 지고 온 피로의 더께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었다. 꼬 홍의 해변에선 내키는 대로 시간을 보내면 된다. 그늘에 누워 mp3에 꽉꽉 채워온 음악을 들으며 햇빛을 쬐며 광합성을 하거나, 식빵 한 덩어리를 들고 바다에 들어가 스노클링을 즐기며 색색깔의 물고기를 구경하는 것도 재미난다. 카약을 타고 해변 뒤쪽에 보물처럼 숨겨진 라군으로 들어가 고요한 바다 위에 원주민처럼 자리잡은 울창한 맹그로브 숲을 구경하는 것도 좋겠다. 교통 수단을 제외한 일체의 해양 모터스포츠가 금지돼 조용한 해변을 표방하는 끄라비의 바다에서는 이 모든 활동이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다. 취향대로 한참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는 걸 사무치게 아쉬워하게 된다.

끄라비는 섬 투어뿐만 아니라 온천과 호수 등이 포함된 정글투어가 유명하다는 점에서 해변이 즐길거리의 전부인 많은 동남아 휴양지와 다르다. 현지인들은 끄라비의 정글이 태국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저지대 우림이라고 강조한다. 이 때문인지 끄라비의 토박이 관광가이드인 텐씨는 “끄라비처럼 바다 수영과 함께 정글 트레킹이 가능한 곳이 없다”며 끄라비를 태국 최고의 관광지로 자신있게 꼽는다.

처음에는 ‘습도 높은 정글 속 온천이라니, 생각만 해도 덥다’는 생각이 앞섰다. ‘남똑 런 클롱 톰’은 끄라비에서 유일하게 자연 발생한 노천 온천으로 ‘클롱 톰의 뜨거운 폭포’란 뜻이란다. 온천 물이 시내를 이뤄 흐르는 정글을 10분 가량 따라 들어가면 아름드리 나무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 감싼 온천이 모습을 드러낸다. 폭포라기엔 소박한 규모인 온천은 계단식으로 흐르는 물에 층별로 바위와 나무 뿌리들이 욕조 모양으로 형성됐다. 어떠한 정형화된 장치나 시설이 없는 것이, 자로 잰 듯 정갈하게 정돈된 기존의 온천과는 180도 다르다. 이용객들이 하도 많이 붙잡아 맨질거리는 나뭇가지에 의지해 수온 40도를 오르내리는 따뜻한 폭포 안에 들어가 간밤에 내린 비로 불어나 거세게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시원하기 이를 데 없다.

온천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카오프라방 크람 자연보호구역은 저마다의 풍취를 자랑하는 호수들이 모여 이뤄진 공원이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건 수영을 할 수 있는 에메랄드 호수. 물 속에 탄산칼슘이 함유돼 에메랄드 빛이 투명한 호숫가에는 나무데크가 깔려 있어 영락없는 노천 수영장이다. 하도 투명해 바닥 모래가 훤히 보이는 호수는 성인 가슴 정도 깊이다. 물의 온도가 오르면 연둣빛 호수는 터키석 색으로 변하는데 도시의 무채색에 길들여져 둔감해진 눈이 절로 환해진다. 에메랄드 호수에 놀러 온 지역 주민들은 손마다 수영복 등 갈아 입을 옷가지를 넣은 비닐봉투 ‘통’을 들고 있다. 벌거벗은 아이들은 연신 깔깔거리며 나무 데크에서 호수로 곧장 다이빙을 해댄다.

돌아가는 길, 아직도 휴양지의 단꿈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 길게 대기하고 섰다. 짧은 倖돨렷?기간 동안 우리는 자연이 제공한 포도당 주사를 맞고 동력을 회복하고는 떠난다. 이 연료가 바닥날 때까지 우리는 또다시 한동안 버틸 것이다. 무뎌진 감각을 회복시켜주는 이 땅을 그리워하면서.

끄라비=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 여행수첩

북유럽 관광객이 유난히 많이 찾아 ‘태국 속 작은 유럽’이라고도 불리는 끄라비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신혼 여행지인 푸켓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다.

말레이시아 어부들이 처음 정착해 살기 시작한 끄라비는 불교 국가인 태국의 여느 지역과 달리 무슬림이 인구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푸켓의 주요 관광지이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출연한 ‘더 비치’의 배경인 꼬 피피(피피섬)는 끄라비에서 더 가까워 스피드 보트를 이용하면 40분 만에 도착한다.

끄라비는 국내에서 직항 노선이 없다. 방콕에서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끄라비 공항에 내리거나 푸켓 국제공항을 이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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