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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회족의 도시 중국 인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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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회족의 도시 중국 인촨

입력
2012.04.18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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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사막으로 숨어들면 실크로드는 꿈을 꾼다

눈이 침침할 정도로 지상은 온통 누랬다. 흙과 바위만이 끝없이 펼쳐졌다. 비행기가 중국 인촨(銀川)공항 활주로에 내려 앉는 동안 창 밖에서 생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황사의 발원지인 중국 서북부 내륙 지역의 풍광다웠다.

그러나 인촨을 둘러싼 척박한 환경이 이 일대 문명을 낳았다. 인촨은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을 가로질러 동방과 서방을 이은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이었는데 이는 도시 자체가 오아시스였기 때문이다. 72개의 호수가 있는 ‘호수의 도시’, 뒤로는 ‘아버지의 산’ 하란산, 앞으로는 ‘어머니의 강’황하가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상인들이 긴 여정의 중간에 쉬어가고, 사막의 사람들이 대를 이어갈 수 있는 삶의 자리였던 셈이다.

사막에 남은 아라비아의 꿈

곳곳에서 뾰족한 첨탑으로 하늘을 찌르고 있는 이슬람 사원들이 그 교류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인촨이 속한 녕하회족자치구 인구의 3분의 1인 2,000여만명은 중동 지역에 뿌리를 둔 소수민족 회족으로 무슬림 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약 1,000~1,400년 전인 중국 당나라 시절 중동 지역의 아라비아와 세 차례 대전을 치렀는데 이때 중국에 왔다가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아라비아 병사와 상인들이 이들의 조상이라고 한다.

“중국은 14~17세기 명나라 시절부터 회족을 한족과 결혼시켜 융화하는 정책을 폈지만 저희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민족의 정체성을 지켜왔죠.”

인촨 중화회향문화원에 들어서자 목덜미부터 발목까지 가린 푸른 전통 의상을 입은 젊은 회족 여성 가이드가 마중을 나왔다. 박물관, 이슬람 사원, 공연장 등을 갖춘 이곳에서는 회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박물관에는 회족이 중동 지역에서 가져온 코란과 향로, 넝쿨 같은 문자와 용맹한 전쟁의 역사가 빼곡하다. 이슬람 사원에서는 ‘여성들은 눈 이외에는 다 가려야 하고 남성도 배꼽부터 무릎까지는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관광객에게도 적용된다. 실제 예배를 드릴 때에는 남녀 신도 간에 병풍을 칠 정도로 이슬람 율법은 엄격하다고 한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회족의 저녁 공연에서 낮의 금기는 가차 없이 깨진다. 밸리댄스 복장의 여성 무용수, 웃통을 벗은 반라 차림의 남성 무용수들이 남녀의 사랑을 주제로 통속적인 공연을 펼친다. 그리워하고, 만나고, 헤어지고, 너풀거리는 몸짓은 과장되어 있다. 관광객들은 약 1시간 정도 이 공연을 안주 삼아 만찬을 즐긴다.

“원래 농사를 짓던 회족들은 문화원이 생긴 후 이렇게 예술가가 되었죠.” 인촨시 여유국 관계자가 술잔을 쨍그랑 부딪히며 설명했다. 조금 아리송했다. 관광객의 얕은 눈으로는 융화 정책에도 굴하지 않고 지켜온 회족의 건전성과 관광산업의 요구 사이의 긴장을 읽을 수 없다. 눈이 어지럽고 취기가 오르는 만큼 밤이 깊어갈 뿐.

관광 코스가 된 전쟁의 미로

교류의 거점에는 침략과 전쟁의 역사 또한 깃들게 마련이다. 이튿날 찾은 황하변 만리장성에는 명나라 때 흉노족의 공격에 대비해 병사들을 주둔시킨 지하 굴인 장병동이 복원되어 있다. 원래 길이는 3km에 달하지만 관광객들에게 공개된 것은 1km 남짓 정도다.

“조심해서 따라오라”는 가이드의 경고는 엄살이 아니다. 한 사람만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을 따라 16m를 내려가면 군데군데 켜진 작은 조명등 외에는 빛이 전혀 없는 동굴이 기다리고 있다. 어두울 뿐 아니라 복잡하다. 적이 들어왔을 경우 길을 잃도록 거미줄처럼 설계했기 때문이다. 중간 중간에는 함정이 있다. 바닥에 쇠꼬챙이를 박아 놓은 5m 깊이 구덩이, 벽에서 불쑥 튀어나온 몽둥이 모양의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는다. 물론 지금은 구덩이를 유리로 덮고 장애물을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 위험하지는 않지만 일행을 잃었을 때는 무시무시할 법하다.

당시 병사들은 그곳에서 밥을 지어 먹고 적을 기다렸다.

“병사들이 쉴 만한 곳은 따로 없었어요. 다른 곳보다 조금 넓은 복도에서 등을 기대어 서 있는 게 유일한 휴식이었을 거라고 추측하고 있죠.”

가이드가 엉거주춤 시범을 보였다. 병사들의 쪽잠에는 어떤 꿈이 깃들었을까, 궁금해하며 들어선 한 방에는 이곳에서 출토된 주먹 크기의 흙인형이 있었다. 겨우 눈 코 입만 달린 조악한 상태이지만 병사들의 그리움을 덜어주었을지도 모를 얼굴.

사막의 일몰, 백일몽 같은

2010년 ‘중국 내 10대 휴양 도시’로 선정되기도 한 인촨의 사막은 중국인들에게 인기 있는 놀이터다. 다양한 놀거리가 개발되어 있다. 모래 바람으로 인한 호흡기질환만 괘념치 않는다면 낙타 타기, 지프차 타기, 모래썰매 등을 통해 망망대해 같은 사막을 누빌 수 있다. 인촨 북부 사파두 사막이 대표적인 곳. 중국의 4대 사막인 이곳은 중국과학원이 1950년대부터 풀을 1m x 1m 간격 그물 형태로 심어 모래 날림을 막는 사업을 해 유명해졌고 360여km의 사막 횡단 철도 포란선의 경유지이기도 하다. 사막에서 하룻밤을 청할 수 있는 호텔도 있다.

사막의 레포츠보다 사막의 정취를 느끼고 싶다면 사호를 찾는 편이 낫다. 황하의 지류를 댐으로 막아 만든 인공 호수 내에 바람에 날린 모래가 겹겹이 쌓인 사구가 섬을 이룬 곳. 철마다 다른 철새가 날아와 갖가지 날개로 물과 하늘을 수놓는다. 여름에는 연꽃이 피고 가을에는 갈대가 3m 높이로 자란다. 사구로 가려면 유람선을 타고 이들 사이를 천천히 흘러가야 하는데 그 기분이 한적하다.

이곳에도 낙타와 지프차, 모래썰매가 기다리고 있지만 백미는 일몰이다. 위치에 따라 물 속으로 떨어지는 해도, 모래 속으로 숨어드는 해도 볼 수 있는데 어느 쪽이든 눈이 시리게 붉다. 깜빡, 백일몽을 꾼 것 같다.

인촨=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 여행수첩

인천에서 중국 인촨까지 가는 직항 노선이 3월 말 생겼다. 진에어 항공에서 주 2회, 화요일과 토요일 왕복 노선을 운영한다. 3시간 걸린다. 시차는 1시간. 진에어 항공사 www.jinair.com

4월부터 11월까지가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다. 사막은 일교차가 크고 모래 바람이 분다. 보온용 겉옷과 코와 입을 가릴 수 있는 마스크 등을 준비할 것.

고대 암벽화가 남아 있는 하란산, 서하 왕조의 왕릉 9개가 모여 있는 서하 왕릉, 중국을 대표하는 감독과 배우의 자취가 있는 진북보서부영화세트장 등의 관광지가 있으며 몽골족 자치구와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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