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1921~1968) 시인이 쓴 시어 전체를 가나다순으로 정리하고 사용 빈도를 분석한 <김수영 사전> (서정시학 발행)이 나왔다. 931쪽 분량으로, 고려대 국문학과 대학원 출신 연구자들로 구성된 '고려대학교 현대시 연구회'(회장 최동호 고려대 교수)의 10년 노작이다. 김수영>
이 책은 민음사판 <김수영 전집> (2003)에 수록된 시 176편을 대상으로, 시에 쓰인 어휘(조사 제외) 5,220개를 뜻풀이하고 해당 단어가 들어 있는 시구를 보여준다. '풀'을 표제어 삼아 사전적 정의를 내린 다음, '풀' '미역국'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등 이 단어가 나오는 시 속 구절을 전부 발췌하는 식이다. 시어는 고상해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당대 시사어, 외래어를 적극 끌어들였던 김수영 시의 특질이 책에서 확인된다. 예컨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원효대사'는 신라 고승이 아니라 "동양방송 TBC에서 1967년 11월8일부터 1968년 3월27일까지 방영한 드라마"를 뜻한다. 김수영>
이 책은 나아가 품사ㆍ의미를 기준으로 시어의 계열을 분류하고 사용 횟수를 분석한다. 통계적ㆍ실증적 접근을 통해 김수영 시의 의미구조와 경향성을 밝히려는 목적에서다. 흔히 '부정(否定)의 시인'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그의 시에서는 '않다'(250회 사용) '없다'(172회) '아니다'(88회) '안'(69회) '없이'(47회) 등 부정어 계열의 어휘가 빈번하게 사용된다. 동시에 시인이 '사랑'(48회) '사랑하다'(23회) '애정'(9회) 등 사랑의 감정을 드러내는 어휘, '좋다'(41회) '웃다'(30회) 등 긍정적 감정의 어휘를 자주 썼음도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최동호 교수는 "흔히 부정의 시인으로 불리는 김수영이 또한 사랑의 시인임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사랑의 변주곡'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듯, 그에게 부정은 긍정에 도달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기도 했다"고 평했다. 김종훈 상명대 교수는 "1964년 발표된 '거대한 뿌리'를 분기점으로 김수영 시에 대명사 '나' 대신 '너', '혁명' '설움' 같은 고고한 추상명사 대신 자질구레하고 누추한 일상을 핍진하게 드러내는 단어가 등장하는 비중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시어 통계를 내며 뚜렷이 느꼈다"며 "이번 책이 김수영 문학의 창조적 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수영은 '얼굴'도 시어로 자주 썼는데(55회), 최 교수는 이에 대해 "김수영은 어릴 적 스케이트를 타다가 이가 여러 개 부러지는 바람에 일찍부터 틀니를 해야 했고, 이 때문에 자기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었다"는 고 최하림 시인의 증언을 전했다. 최씨는 <김수영 평전> 의 저자이기도 하다. 김수영>
책 말미엔 김수영 시 176편에 대한 판본 대조표가 있다. 그의 육필 원고, 최초 발표본이 실린 문예지, 생전 발간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 (1959), 사후 발간된 선집 및 전집을 대조해 표기, 행, 연, 띄어쓰기의 차이를 밝힌 의미 있는 자료다. 달나라의>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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