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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들의 희망가… "방황하니 세상이 보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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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백수들의 희망가… "방황하니 세상이 보이더라"

입력
2012.04.1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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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제대 후 하루 종일 집과 연기학원을 오가던 시절이 있었지. 그런데 비가 엄청 쏟아지던 어느 날, 다 헤진 슬리퍼를 질질 끌며 가던 중 미끄러지면서 엄지발가락이 아스팔트에 갈려버리고 말았어. 고통과 함께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밀려 왔어. 그날 이후에야 밤 늦게까지 일하느라 피곤해서 입술이 터진 아버지, 매일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다니는 어머니, 내가 배우를 하니까 자기는 좀 더 돈을 벌어야 한단 생각으로 직장을 택한 동생이 눈에 들어오더라. 바보같이 아무것도 보지 않고 달려온 내가 후회스러웠어…."(박기완(24)씨의 '놀자 play it!' 중)

청년층의 체감 실업률이 10% 이상인 한국사회에서 '청춘'의 또 다른 이름이 된 '백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기성세대의 위로와 동정을 받던 그들이 "우리 이야기는 우리 스스로 하겠다"며 나섰다. 백수 100명이 각자의 사연을 공개한 '백수일기'를 공동으로 냈다.

이는 진로를 고민하는 대학생에게 적절한 멘토를 붙여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주)캠퍼스멘토가 지난해 말부터 4개월 동안 회사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백수의 사연을 응모 받은 후 그 중 100명을 선정해 모은 결과물이다. (주)캠퍼스멘토는 "우리 사회에 고단한 청춘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정작 그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청춘들이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 공감하라는 취지에서 '백수일기'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백수일기'의 사연들이 유별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백수들의 고백은 솔직하고 기운 차다. '열정과 웃음으로 가득한 축제기획자가 되겠다', '감성이 있는 언론인이 되겠다' 같이 장래희망을 밝힌 글, '하루를 살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 '좌절하지 마라, 나라서 될 것이니까' 라며 각오를 다지는 글, '우리 모두 아름다운 잉여가 되자'며 스펙 쌓기에 목 메는 것과는 다른 삶을 제안하는 글 등은 아프고 주눅든 청년 백수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린다.

현실과 이상의 간극 사이에서 방황하던 백수들이 자신의 가치를 긍정하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과정은 소소하지만 감동적이다. 청암대 간호학과에 재학 중인 박미나(21·여)씨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집을 나간 힘든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그 노력이 허탈해 방황했던 대학생 시절"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 이후 여행을 통해 비로소 순간의 행복함을 깨달았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다"는 박씨의 성장기는 평범해서 더 마음을 울린다.

'백수일기'의 저자 중 한 명인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휴학생 이민재(26)씨는 올해 초 졸업 전 마지막 학기를 휴학한 후 이 일에 참여하며 진로를 바꿨다. 원래 보험 관련 자격증을 따려고 했지만 지금은 서울과 부산 등의 대학생들과 함께 외국에 한국 문화를 알리는 '동아리방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다.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몸값 올리는 것 외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자"는 결심을 굳혔기 때문이다. 이씨는 "'백수일기'가 안정된 직장에 취직하는 것 이외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나누고 싶은 우리 또래에게 힘을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캠퍼스멘토는 5월 초까지 아름다운재단 소셜펀딩 사이트 개미스폰서(www.socialants.org)를 통해 '백수일기' 500부 인쇄·배송비인 330만원을 모금한 후 공감과 격려가 필요한 청춘들에게 무료 배포할 계획이다.

박우진기자 panoram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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