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새벽같이 익산행 KTX 표를 끊는 내 손에 들린 원고 한 벌. 5월에 시집을 출간할 안도현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 그 대목을 환영하듯 흐드러지게 핀 꽃들을 차장 너머로 가리키면서 바야흐로 봄이 왔음을 여실히 실감하는 나였다.
그러고 보면 아침 열차가 객실마다 빠른 속도로 매진을 기록하는 데는 그룹 지어 꽃놀이를 떠나는 아줌마 부대들의 나들이가 한몫을 한 듯싶었다. 연분홍 모자며 모자 달린 등산 점퍼며 한껏 멋을 낸 아줌마들의 수다가 여고 시절 우리와 다르지 않더라고 하자 역에 마중 나와 있던 시인은 말했지.
전과 다르게 꽃 좋은 걸 알고 꽃을 기다리게 되면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라고. 그 순간 나는 아마도 이맛살을 찌푸렸다지. 시인의 차에 올라 나는 아래로 더 아래로 길을 따라 달렸다. 이것은 매화, 이것은 벚꽃, 이것은 살구나무, 이것은 진달래… 아, 이게 진달래구나. 시인은 아스팔트 키드로 자라난 내게 이것저것 알려주기 바빴다.
세상에나, 너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러고 보면 이 땅의 꽃과 나무가 참으로 무궁무진할 텐데 내가 아는 거라곤 장미나 개나리나 대나무 정도이니 긴긴 학교 공부 가운데 내가 배운 건 대체 뭐라니. 주먹만한 선지가 둥둥 뜬 무국에 육회비빔밥을 싹싹 긁어먹고 졸다 깨보니 저 산이 미륵산이고 저 탑이 미륵사지 삼층석탑이라 했다. 몰라본 게 내 죄랴, 눈으로 봐야 진짜 앎인 걸 이제야 안 걸.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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