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미르 카파디아는 모범적인 미국 이민가정의 자녀였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인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그는 대학 재학 중 미 의회에서 인턴생활을 하고 워싱턴에 있는 컨설팅회사에 취직했다. 하지만 모국에 있는 또래 친척과 친구들에 비해 자신의 삶이 무료하다고 느꼈다. 결국 지난해 사표를 내고 부모의 고향으로 떠났다. 현재 뭄바이의 외교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카파디아는 "이곳에는 창조적인 기회가 많다"며 "사람들이 워싱턴에서보다 훨씬 빨리 움직인다"고 말했다.
미국 이민가정의 자녀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자신들의 부모가 한때 등돌렸던 나라로 돌아가고 있다고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이 17일 보도했다. 미국인들의 해외 진출이 낯선 일은 아니지만 이민가정 자녀들의 모국 회귀 행렬은 새로운 현상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추세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민 가정 자녀의 출국 통계를 작성하고 있지 않지만 인도 정부 관계자는 2010년에만 10만명의 인도계 후손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민가정 자녀의 모국 행은 중국,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자녀들의 모국행 결정이 부모에게는 당황스러운 일이다. 부모들 대부분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비참한 고용환경 등을 감수하고 미국에서 생활해왔기 때문이다. 중국계 이민가정 출신으로 2009년 코넬대를 졸업한 마가렛 탄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버지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불황을 겪고 있는 미국에서 만족할만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그는 결국 상하이에 있는 컨설팅회사에 취직했다.
이민가정 자녀들이 부모의 나라를 찾는 것은 일자리 등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미국 이민정책연구소의 관계자는 "사람들이 기회를 찾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충성심 등을 얘기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전쟁과는 다른 일"이라고 IHT에 말했다. 이민가정 자녀들은 부모의 고향에서 두 문화를 경험한 장점을 살리고 있다. 대부분 모국에 친척 등 인맥을 갖고 있고 현지 언어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한편 이민 가정 자녀의 모국 행은 수십 년간 지속된 일방적인 두뇌유출 흐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개발도상국의 우수 인재들이 미국으로 몰리는 현상이 멈추지는 않았지만 반대 흐름도 또렷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을 미국 퇴조의 전조라기보다 해외에서 쌓은 경험과 인맥을 교환할 수 있는 두뇌순환으로 보고 있다고 IHT는 전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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