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올림픽 금메달은 떼어 논 당상이라고 말한다. 지금까지 보여준 믿음 때문이다. 그럴 만도 하다. 실제 지난 3월 열린 113년 세계 최고전통의 전영오픈에서 랭킹 1위 중국의 차이윈-푸하이펑(蔡贇-付海峰) 조를 물리치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끈질기게 괴롭히던 팔꿈치와 어깨 부상에서도 벗어났다. 남은 건 밤낮이 뒤바뀌는 시차에만 적응하면 된다.
7월 런던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 보증수표 남자복식의 이용대-정재성 조(랭킹2위ㆍ이상 삼성전기)이야기다. 100여일 앞으로 다가온 올림픽 시상대 맨 위에 서기 위해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을 12일 태릉선수촌에서 만났다. 흔히 올림픽 개막 D-100일을 남겨 두고는 덕담을 주고 받는 게 언론계와 체육계의 오랜 불문율이다.
‘국민 남동생’ 이용대(24)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올림픽 금메달은 아무도 모른다”였다. 그는 “절대 엄살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차 강조했다. 주위에서 쏟아내는 금빛 전망에 대한 부담감을 피하기 위한 사전포석일까? 이용대가 계속 말을 이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혼합복식)이라는 천당과 1회전 탈락(남자복식)의 지옥을 모두 경험했다. 결국 당일 컨디션에 따라 메달 색깔이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사실 ‘원죄’가 있다. 2006년 손을 잡은 이후 6년 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올랐지만 정작 올림픽 금메달은 손에 넣지 못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유력한 금빛 후보로 꼽혔지만 결과는 1회전 탈락이었다. 경쟁 상대로 여기지도 않았던 덴마크에 0-2로 완패한 것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복식(하태권-김동문) 금맥 전통을 어이없이 무산시킨 이들은 “방심하는 순간 네트가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며 쓰라린 패배를 곱씹었다.
여섯 살 위 선배 정재성(30)은 이용대 보다 한 발 더 나갔다.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을 비롯한 메이저 대회에 나가면 결승전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경기가 1회전이다. 첫판만 잘 풀리면 결승까지 기세를 이어갈 수 있지만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살얼음판의 연속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결승전을 포함해 5게임 모두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라며 경험담을 전했다.
금빛 각오를 듣고 덕담을 전하려 간 취재현장이 갑자기 썰렁해질 무렵, 곁에 있던 성한국(49ㆍ대교 눈높이)대표팀 감독이 분위기 반전을 꾀했다. “처음부터 ‘금메달 걱정 마시라’라고 하면 아무런 감동이 없지 않느냐”며 “(이)용대와 (정)재성이의 호흡조절용 멘트”라며 급하게 불을 껐다.
성 감독은 “이번엔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결승 상대 0순위인 차이윈-푸하이펑 조를 상대로 기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대전적 11승 10패로 대등하지만 전영오픈을 계기로 무게 중심의 추가 우리쪽으로 완전히 기울었다”고 덧붙였다.
이용대와 정재성조는 이미 한국을 뛰어넘어 세계 최강의 현역 듀엣으로 꼽히고 있다. 이용대(180㎝)가 한 뼘 더 큰 키로 네트를 장악해 철벽수비를 펼치면 정재성(168㎝)이 후방에서 스매싱을 내리 꽂아 곧바로 득점으로 연결하는 승리 방정식이 가동된다. 게다가 성격차이도 환상의 조화를 이뤄 다른 팀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성 감독은 “용대가 섬세하고 여성스러운 반면 재성이는 거칠고 급하다”며 “이런 차이가 경기에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한다”고 말했다.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한다는 이용대는 “지난해부터 체육과학연구원 구해모 박사와 대한배드민턴협회 국제협력 부담당관 김홍기 박사로부터 심리학 강의를 듣고 멘탈 관리에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정재성은 발라드 풍의 음악을 들으며 마음을 다스린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배드민턴 주니어 대표를 지낸 최아람씨와 10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한 그는 “만일 배드민턴을 하지 않았다면 축구나 이종격투기 선수가 되었을 것”이라며 웃었다.
한편 성 감독은 “런던 입성 전까지 이들을 중국과 인도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과 슈퍼시리즈 등에 출전시켜 금빛전망을 더욱 담금질하겠다”고 말했다.
최형철기자 hc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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