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16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북 영주의 중학생 이모군 사건과 관련해 교육 당국의 학생 자살 방지 대책이 부실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지난해 이군이 정서행동발달 심리검사 결과 '자살 위험도 고위험군'으로 판정 받는 등 뚜렷한 징후를 보였고, 병원 상담과 심리 치료가 이뤄졌음에도 극단적 선택을 막지 못한 것은 자살 예방 시스템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학교측에 따르면 자살한 이군의 부모에게 정신과 치료를 권유했으나 부모는 "아이가 괜찮아 지는데 왜 자꾸 환자 취급하느냐"며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상훈 한국 생명의전화 원장은 "정신과 진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학부모들이 거부하는 경향이 많다. 자살 위험군 학생이 발견됐을 때 치료를 의무화하는 원칙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 원장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상처가 크고 심각했던 이군을 가정에만 맡겨둘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고위험군 학생을 전문가에게 연결시켜주는 시스템도 부족했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는 "학생을 교육청이 운영하는 위기학생 전문 심리상담치료센터(위센터)에만 보내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지만 위센터에는 임상 경험이 있는 전문가가 거의 없다"며 "학생들이 찾아가도 임상적 도움을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위센터에 전문가를 확충하거나 정신과 의사들과 연계하는 시스템을 갖춰 위센터 교사들이 의사에게 학생을 의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 소아청소년 정신보건센터의 윤명주 팀장도 "학교에선 전문상담교사가 자리잡아가고 있지만 실질적인 문제를 다뤄주는 전문인력은 부족한 상태"라며 "일부 학교는 이런 문제를 쉬쉬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지역에 있는 정신보건센터로 넘어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교사들이 참고할 매뉴얼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 4월 '학교 및 교육기관에서의 학생자살 위기관리 프로토콜'을 개발해 일선 학교에 보급했다. 그러나 자살 위기 학생이 발견됐을 때의 대응 방안을 보면 보호자, 교장, 상담교사, 보건교사에 사실 전파, 교육청 보고, 학교위기관리팀의 소집 등 행정적 대응에만 초점이 맞춰져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교육 일선의 평가다. 교과부마저도 자료 서두에 '현장성과 실효성 제고를 위해 최대한 노력했으나 다양한 여건을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밝혀두고 있을 정도다.
윤명주 팀장은 "학교의 위기관리시스템이 형식적으로 운영되지 않도록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검증하고, 예산지원을 통해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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