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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쟁 만능 사회, 행복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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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경쟁 만능 사회, 행복하십니까

입력
2012.04.1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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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다니는 고교 교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강당에서 학부모 총회를 끝내고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벽에 성적표가 붙어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반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표에는 학급 석차는 물론 학년 석차까지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었다. 전교생 600여명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운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성적 공개가 학생들을 자극하고 경쟁심을 부추겨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사실 '경쟁'은 인류 사회를 발전시켜 온 주요 동력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츠는 최근 국내에도 소개된 신간 에서 "우리는 경쟁과 도전을 즐기기 때문에 경쟁은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류학, 생물학, 경제학 등의 최신 연구결과를 근거로 인간은 경쟁을 통해 진화해왔으며, 본래 경쟁적인 존재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때문에 그는 아이들의 자존감을 살려주기 위해 경쟁을 부추기지 않는 것은 사회 전반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새삼스러운 얘기는 아니다. 다윈이 150여년 전 에서 인간의 본성이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이라고 설파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우리 몸은 생존기계일 뿐이고 이기적 유전자가 생명의 주인이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지만 러시아의 동물학자 크로포트킨(1842~1921)은 오랜 기간 동물의 세계를 관찰한 결과, 개체들 간의 치열한 생존경쟁만큼이나 '상호부조'도 진화의 중요한 동력임을 밝혀냈다. 다른 종 사이에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같은 종의 동물들은 힘을 합쳐 사냥을 하고 맹수들의 습격을 받으면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주는 등 서로 돕는 특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실제 현대의 뇌과학과 인지과학은 인간이 경쟁이라는 본성 외에도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정의감을 지닌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상호부조와 연대, 협동이 경쟁보다 더 나은 성과와 행복을 가져다 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수많은 종을 제치고 지구상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상호부조라는 유전자가 다른 종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학생 간의 경쟁보다 팀별 공동학습을 장려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학업성취도를 유지한다.

핀란드의 학교에선 우리처럼 우열반을 꾸리지 않는다. 다양한 학생들이 섞여서 공부하되, 팀을 짜서 수준이 높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끌어주는 식이다. 성적이라는 오직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을 줄 세우지도 않는다. 시험도 '지식'이 아닌 '생각'을 평가한다. 영어 과학은 물론 음악까지 에세이로 시험을 치른다. 중학생들의 평일 공부시간은 4시간22분으로 한국(8시간55분)의 절반도 안 된다. 그런데도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다.

2004년 핀란드 고교에서 1년간 생활한 경험이 있는 일본 여성 지쓰카와 마유는 핀란드 교육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한다(그는 2009년 한국 대학에서도 1년간 유학했다). "일본이나 한국은 공부 잘하는 아이에게만 너무 신경을 써요. 학생 한 명 한 명의 가능성을 없애버리는 교육인 셈이죠. 핀란드 교육은 저마다의 개성을 존중해주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열등감 없이 공부할 수 있어요."

경쟁과 상호부조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상대를 도태시키기 위한 무한경쟁만 존재할 뿐 협력과 연대의 정신은 실종된 지 오래다. 경쟁의 룰도 공정하지 않다. 지식과 돈을 지닌 1%가 반칙과 편법으로 모든 것을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경쟁사회요, 견해를 달리하는 쪽을 무조건 배제하는 첨예한 갈등사회다. 경쟁과 갈등이 지나쳐 상호 증오와 불신이 팽배하다 보니, 어느 순간 우리 공동체가 붕괴되리라는 불안감마저 든다.

'경쟁과 대립의 시대에서 조화와 균형의 시대로 넘어가는 커다란 변곡점.' 안철수 서울대 교수가 평가한 4ㆍ11 총선의 의미다. 이번 선거에서 보수와 진보의 득표율이 균형을 이룬 것은 경쟁과 상호부조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국민들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고재학 경제부장 goindo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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