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서울시교육감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가 1심의 벌금 3,000만원 형을 깨고 17일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것은 곽 교육감이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건넨 2억원이 단순한 ‘선의에 의한 부조’가 아니라 교육감직 보전을 위해 전달됐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또한 실형 선고로 후보자 사후 매수 행위에 대한 엄중한 처벌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날 항소심을 앞두고 곽 교육감에 대한 실형 선고를 예상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항소심 재판부가 새로운 증인을 부르거나 추가적으로 사실관계를 다투지 않은 채 세 번만에 속행 재판을 종결하자 양형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1심 재판부가 쟁점인 2억원의 대가성을 인정하면서도 곽 교육감이 선의로 돈을 준 것으로 결론을 낸 이상 항소심 재판부가 그 부분을 뒤집는 데 큰 부담을 느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쪽이 다수였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2억원이 선의로 건네진 것이 아니라 교육감직 보전을 위해 지급된 것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곽 교육감과 박 교수가 후보 단일화를 두고 장시간 심각한 갈등을 이어갔고 금전에 관해서도 완전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등 대가성 없이 2억원을 선의로 건넬 만큼 친밀하거나 특수한 관계가 아니었던 점을 들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곽 교육감이 공판 과정에서 ‘당시 나의 자산 규모를 볼 때 2억원은 굉장히 벅찬 금액이었다’고 진술한 상황까지 고려하면, 그들 사이에서 오간 2억원은 선의를 벗어난 대가성 있는 돈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곽 교육감이 박 교수의 사퇴로 인지도 상승과 함께 ‘1.1% 차이 당선’이라는 정치적 이익을 챙긴 사실까지 뒷받침되면서 곽 교육감의 행위는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것으로 평가절하됐다.
2억원이 이처럼 선의로 제공되지 않았다는 전제가 세워지자 양형에서도 1심보다 엄격한 잣대가 적용됐다. 우선 재판부는 곽 교육감 변호인단이 1심 선고 이후 “대가를 목적으로 사전 합의를 안 했음에도 공직선거법 232조 1항 2호로 처벌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 “동 조항은 시기와 대상을 불문하고 사퇴행위와 대가관계가 있는 모든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고 일축했다.
이어 재판부는 “후보자를 사후 매수하는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중대한 범죄”라고 재차 강조하고 “우리나라 교육 중심지인 수도 서울의 교육감이 저지른 후보자 매수 행위에 대한 원심의 처벌은 지나치게 가볍다”며 1심보다 무거운 징역형을 택했다. 후보자 매수 행위라는 범죄의 중대성과 사안의 특수성을 연계할 때 실형 선고가 적정한 양형이라는 판단이다.
1심 선고 후 꾸준히 제기된 곽 교육감과 박 후보자 사이의 형량 형평성 논란도 재판부의 판단에 한몫을 했다. 검찰은 그간 “돈 준 사람은 벌금형, 돈 받은 사람은 실형을 선고한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드러내며 “곽 교육감도 마땅히 실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대향범 관계에 있는 곽 교육감과 박 후보자의 형량을 고려해 양형할 필요가 있다”며 곽 교육감에게는 징역 1년을, 박 후보자에게는 1심보다 절반이 줄어든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해 “1심보다 법적인 엄격함을 강화한 판결”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재경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1심이 법적으로 안정적인 선택을 했다면, 항소심은 미래 법질서에 더 중점을 두고 엄격성 쪽으로 방향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사 범죄를 막으면서, 동시에 공직선거법 해석 논란도 막자는 게 판결문 행간에 담긴 의미”라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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