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주변에서는 초록색 간판에 '학교 주변 200m는 어린이 식품안전보호구역입니다'라고 적힌 그린푸드존(Green Food Zone) 표시를 흔히 볼 수 있다. 어린이 건강을 해치는 불량식품과 비위생적인 음식 판매를 막으려는 것이지만 아이들이 정크푸드를 접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다. 지천에 피자 햄버거 치킨 가게가 널려 있기 때문. 패스트푸드를 자주 먹으면 비만, 당뇨, 고혈압, 심혈관계 질환 등의 위험이 높아지는데 어렸을 때 입맛이 고정되면 성인이 되어서도 변하기 어렵다. 서울 동구로초등학교 김은희 영양교사는 6학년 학생 13명과 지난 1년 동안 특별활동 시간을 활용해 전통 간식 만들기를 체험했다. 진달래화전부터 궁중떡볶이 경단 탕평채 조랭이떡국 등 우리 전통음식을 배운 아이들은 "내 몸을 생각해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겠다"며 생각의 변화를 보여주었다.
스스로 간식 챙겨 먹는 아이들
전통 간식 만들기 특별활동을 하기 앞서 학생들을 상대로 식생활 습관을 조사한 김 교사는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 62%의 학생 부모가 맞벌이를 하고 있었고 간식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사먹는다'고 답한 학생도 절반(54%)이 넘었던 것. 김 교사는 특별활동 메뉴로 영양가가 높고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전통음식을 골라, 가끔이라도 이런 간식을 챙겨먹도록 하기로 했다.
하지만 단순한 요리실습은 요리를 즐기는 것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향토음식, 발효음식, 궁중음식, 통과의례음식을 소개하는 등 이론교육과 함께, 음식에 얽힌 다양한 배경지식을 함께 소개해야 효과적이다.
가령 조선시대 궁중음식인 탕평채를 '청포묵에 야채와 고기 달걀 등을 얹어 버무린 음식'이라고만 설명하면 재미 없다. 21대 임금인 영조가 당쟁을 뿌리뽑기 위해 정치 세력에 균형을 꾀한 탕평책(蕩平策)을 실시했는데 이를 논하는 자리에 처음 올랐던 음식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고, 실제로 영양학적으로 완벽한 균형을 갖춘 음식이라고 해야 탕평채란 음식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깍두기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학생들이 자주 접하는 배추김치, 파김치에서부터 갓김치 고들빼기김치, 나박김치까지 김치의 종류를 다양하게 알려 주고 지역마다 가지각색인 김장법와 더불어 김치의 효능을 소개하니 김치를 싫어하던 학생도 깍두기 만들기에 적극적이었다.
1년 간(22시간) 한차례 지각ㆍ결석 없이 전원 100% 출석한 것은 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켰기 때문이다. 김 교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음식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곁들이니 학생들이 재미와 유익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음식의 소중함 알게 됐어요"
김 교사가 느낀 가장 큰 보람은 학생들이 우리 맛의 매력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실습을 마친 학생 대부분이 "영양교육이 나의 식생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내 몸을 위해 올바른 식품을 선택하고 영양가 있는 간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아이들에게 자리잡은 것이다. 학생들은 '전통 간식을 직접 만들 수 있어서 좋았다'는 것에서부터 '우리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했다' '음식 만들기가 즐거웠고 만드는 순간은 요리사가 되고 싶었다' '집에서 스스로 요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음식이 우리 몸에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됐다'는 다양한 소감을 밝혔다.
실습한 음식 중에서 특히 국수장국과 궁중떡볶이를 좋아했던 학생들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가족을 위해 집에 포장해 가거나 좋아하는 친구들과 교사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올해도 고학년을 대상으로 '전통 음식 만들기' 특별활동을 지도하고 있는 김 교사는 "교실에서의 딱딱한 수업진행보다 꾸준히 직접 참여하는 실습이 영양교육의 효과를 높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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