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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제기 기자의 Cine Mania] 우리 시대의 한국영화들 어떤 건축으로 기억될까

입력
2012.04.16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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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밀라노의 기적'(1951)은 이탈리아 밀라노의 빈민가를 배경으로 신이 행한 기적을 묘사한다. 빈궁한 사람들의 군내나는 삶이 스크린을 장식하지만 영화는 마냥 맑고 밝다. 공권력의 부당한 법 집행에 맞서던 빈자들이 밀라노 두오모 광장에서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나는 마지막 장면이 무척 인상적이다. 삶의 희망을 전파하고 싶은 감독의 낙관주의에 미소가 지어지는 이 장면에서 고색창연한 광장의 고건축물이 눈길을 잡는다.

60년이나 된 흑백영화 화면은 세월에 문드러져 선과 색이 희미하지만 지금도 두오모 광장을 지키고 있는 건축물들로 인해 선연한 이미지를 남긴다. 건물 위에 설치된 패션 브랜드 보브와 코카콜라 광고판은 무척이나 모던하다.

한국영화 '서울의 휴일'(1956)은 서두를 탑골공원에서 열며 당대 서울 곳곳의 풍경을 잡아낸다. 등장인물들이 한 건물 옥상에 있는 노천 카페에서 맥주를 마시며 땀을 식히는 모습 너머 서울시청의 지붕이 보이기도 한다. 이미 세상에서 지워진 자들이 등장하는, 유령과도 같은 영상은 그 장면만으로도 생명을 얻고 현재성을 띤다.

옛 영화 속에 담긴 실제 공간이나 건축물이 주는 정서적 효과는 크다. 우리가 현재 이곳에서도 볼 수 있는 건축물을 오래된 프레임 속에서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과거로 직행한다. 건축은 영상을 통한 시간여행을 돕는 마법의 통로인 셈이다.

2010년 하비에르 바르뎀에게 칸국제영화제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안긴 '비우티풀'은 반어적으로 건축을 활용한다.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손길로 장식된 바르셀로나가 이 영화의 배경이다. 카메라는 관광객들이 몰리는 수려한 건축물들을 비추기보다 바르셀로나 뒷골목의 비극에 초점을 맞춘다. 누구나 한번쯤 찾아보고 싶은 도시에 대한 판타지는 영화 속 어둠과 슬픔을 극대화 한다. 할리우드 멜로 '500일의 썸머'(2009)는 건축을 전공한 남자 주인공을 통해 로스앤젤레스의 건축물을 소개하며 낭만을 더한다. 관객 감정의 높낮이를 조절하고, 정서의 결을 다듬질하는데 있어 건축은 훌륭한 감성적 도구다.

최근 멜로 '건축학개론'이 흥행에 성공하고, 다큐멘터리 '말하는 건축가'가 다양성영화로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외국영화와 달리 건축을 아예 제목에 포함시키는, 직설적 전략을 택했는데 건축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반영한 것이리라.

건축영화들의 흥행 속에 의문도 든다. 과연 우리 시대의 영화들은 후대에 어떤 건축물들로 기억되고 그들의 삶과 연결될 것인가. 흔적을 찾기 힘든 종로의 피맛길과 옛 모습은 사라지고 간판만 남은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등을 떠올리면 암울해진다. 개발 연대의 논리를 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건축과 영화로 꿈꾸는 영생은 부질없는 희망인가.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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