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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냥 나꼼수일 때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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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그냥 나꼼수일 때가 좋았다

입력
2012.04.1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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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1 총선은 당초 예상과는 달리 야당의 패배로 끝났다. 워낙 야당의 승리를 기정사실화했던 선거였기에 야권 지지층이 받은 충격은 컸다. 야당의 패인에 대해선 여러 원인들이 지적되고 있다. '박근혜의 힘'이라는 여당 측의 승리 원인 이외에도 위기관리능력의 부재, 전략의 부재, 리더십의 취약 같은 문제들이 지적된다. 그리고 선거 종반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에 민주당이 신속하고 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도 마지막 승부에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진단되고 있다. 나꼼수 팬들을 의식한 나머지, 민주당이 자신의 허물에 대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중간층을 납득시키지 못했고 보수층을 자극해 결집시켰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번 총선에서 1,000표 이내로 당락이 갈린 지역구가 모두 11곳이었음을 감안하면, 여야간 의석수 차이가 12개였던 이번 선거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음을 추론할 수 있다.

애당초 민주당이 나꼼수의 인기를 등에 업고 총선의 승리를 노렸던 것 자체가 잘못된 전략이었다. 서울에서만 치러졌던 10ㆍ26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전국적으로 치러지는 총선은 엄연히 환경이 다른 선거였다. 그런데 민주당은 10ㆍ26의 추억에만 젖어 전국적인 나꼼수 마케팅에 나섰다. '지역구 세습'이라는 논란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그래도 서울에서는 젊은 층의 지지가 어느 정도 유지되었지만, 비수도권에서는 막말 파문에 대한 반응이 냉담하였음을 선거 결과는 보여줬다. 막말 파문 논란이 계속되던 선거 막판 서울광장에서 있었던 나꼼수의 '삼두노출' 이벤트조차도 나꼼수 열렬 팬들은 결집시켰겠지만, 그대신 그 이상의 다른 유권자들을 이탈시켰을 가능성이 크다.

그 인기 높던 나꼼수가 어떻게 이런 소리를 듣는 처지가 되었을까. 나꼼수의 불행은 그들이 무대를 정치세계로 옮기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김용민의 출마로 어제의 심판은 하루아침에 선수가 되었고, 막말과 욕설을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공인 중의 공인'이 되어버렸다. 8년 전의 막말을 세탁하고 뛰어들 시간조차 없었다. 정치라는 것을 우습게 보고 과욕을 부린 것이었다. 이들의 과욕은 도처에서 드러났다. 김용민은 '큰싸움'을 하러 출마했다 했고, 막말 파문 이후에도 '김용민 대 이명박'의 대결을 내걸었다. 막말 파문이 아니었더라도 아무런 지역연고도 없이 막판에 뛰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한 과장의 어법은 B급 정서의 자유가 보장되는 팟캐스트에서는 거침없다는 박수를 받을 장면이었겠지만, 오프라인의 선거공간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김용민과 나꼼수 스스로가 선거공간으로의 갑작스러운 이동 앞에서 여러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 사실이었다.

나꼼수는 그냥 나꼼수일 때가 가장 좋았다. 팟캐스트에서의 나꼼수는 정치적 치외법권지대에 있었다. 'ㅅㅂ'를 내뱉어도, '조'를 외쳐도 누가 뭐라하지 않았다. 팬들은 함께 "쫄지마"를 외치며 그들의 욕설에 화답했다. B급 정서의 후련함이 공유되었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B급 언어들을 그대로 갖고 A급 세계로 들어가겠다고 하면서 일은 어그러져버렸던 것이다. 애당초 나꼼수는 정치지도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가카'에 대한 분노를 안고 있던 대중들에게 B급 언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다시 힘을 내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물론 그 역할은 정치지도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그 중요한 역할을 계속할 수 있었던 나꼼수가 어쩌다가 선거를 앞에서 이끄는듯한 위치에 졸지에 서버리게 된 것이었을까.

막말 파문이 야당 패배에 미친 영향에 대한 논란이 아직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김용민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낙선자의 근신은 끝났다"며 국민욕쟁이가 되겠다고 나섰다. 김어준은 한술 더 떠서 "나꼼수 때문에 선거에서 진 것이 아니라, 나꼼수 때문에 이만큼 저지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선거 패배의 큰 충격 앞에서 적어도 지금은 함께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제 국민의 상식 앞에서만큼은 쫄 줄도 알았으면 한다. 물론 나꼼수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팬들은 다시 열광할지 모른다. 그러나 어쩐지 전처럼 속시원하게 웃기만 하며 들을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깝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유창선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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