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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나꼼수, 세상을 넘본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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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태 칼럼] 나꼼수, 세상을 넘본 광대

입력
2012.04.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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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 김용민의 막말이 총선 승패를 갈랐다고 한다. 나꼼수의 '위대한 탄생'에 편승한 민주통합당의 헛된 욕망을 배신하는 위대한 자살 골을 넣고 제 풀에 쓰러졌다. 정치의 전복(顚覆)을 꿈꾼 광대 놀음은 비극으로 끝났다. 나꼼수와 열렬한 추종자들은 다시 모반을 꾀할지 모르나 '가카 헌정방송'을 '그네 헌정'으로 바꾼들 달라질까.

중죄인이라던 김용민은 고작 이틀 근신 뒤 '국민 욕쟁이'로 나섰다. 제 말투를 빌리면 욕으로 흥한 자, 욕으로 망하는 성경 진리를 아직 깨치지 못한 모양이다. 하기야 욕설과 막말은 마약과 같다. 그 허세와 뿌듯한 자기도취는 사회 변방의 열등한 무리일수록 황홀한 법이다. 원래 제 자리를 찾는 걸 나무랄 일은 아니다.

애초 사단은 변두리 놀이패가 사회와 정치의 중앙 무대에 오르는 희한한 꼴을 주류 정치와 언론이 부추긴 것이다. 가카와 주변은 비리와 부패로 나꼼수'대첩'에 빌미가 된 원죄가 크다. 대중의 열광에 넋 잃은 야당이 욕쟁이 광대를 총선 무대에 올린 잘못도 그에 못지않다. 트위터를 닮은 언론도 제 목줄을 내놓고 게릴라 언론 나꼼수를 띄웠다.

가볍고 유쾌 발랄한 정치를 표방한 나꼼수는 속 풀어주는 언론, 레지스탕스 저항운동을 자처했다. 권력 비리를 걸쭉한 욕설에 버무려 풍자, 불만 집단과 소외계층 등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냈다. 내세울게 없는 지적 적빈(赤貧)의 정치집단이 함께 천박한 깨춤을 춘 것은 언뜻 자연스럽다. 반듯하던 문재인도 달콤한 유혹의 독성을 경계하는 안목은 없었다.

광대는 종교나 마술처럼 인간사회의 깊은 욕구를 채워준다. 고대의 무당 샤먼에서 봉건사회의 광대, 현대의 문화 게릴라에 이르기까지 기성 질서와 사고를 비웃는 풍자로 억눌린 정서를 위로하고 해방시킨다. 양반들의 악덕과 위선을 음탕한 패설로 비웃는 전통 탈놀이의 발칙한 일탈에 봉건 지배계급이 너그러웠던 배경이다. 놀이패에 던져준 두둑한 행하(行下)는 체제 안전판 노릇을 치하한 것이다.

나꼼수 현상이 21세기 한국 사회와 정치를 휘저은 까닭은 물론 다를 것이다. 정봉주는 MB 정권이 히틀러와 싱크로율 100%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약간의 진실에 훨씬 많은 거짓과 치졸한 막말을 뒤섞은 나꼼수가 뭐라 떠들든 MB의 독재와 선동력은 히틀러의 발치에도 못 미친다.

나꼼수가 유난히 독창적인 것도 아니다. 서구에는 낡은 권위와 불평등에 모반과 변혁을 선동하는 문화 비틀기, 해적 미디어, 게릴라 언론이 수십 년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그 사회정치적 배경을 천착한 연구도 많다. 그러나 이를테면 독일의 '놀이 게릴라(Spassguerilla)'처럼 유희를 통한 저항운동을 사회의 주류로 수용하는 곳은 없다. 주변적 현상으로 다룰 뿐이다.

그 바탕은 언론과 사회와 정치가 진지한 논쟁과 고민으로 올바른 변화를 이끄는 튼튼한 전통이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느 구석이나 불평등과 권위주의, 도덕적 위선이 뿌리깊다. 이런 현실에 대한 반감이 이미 MB 이전에 노무현의 거친 정의감을 만나 모반의 불을 지폈다가 나꼼수에서 거센 불길이 된 것일 수 있다.

적대적 보수세력의 악덕보다 가볍지 않은 도덕적 위선을 드러낸 자괴감이 노무현을 좌절하게 했듯, 나꼼수와 그를 추종하고 편승한 세력은 훨씬 저열한 위선에 스스로 딴지 걸려 나자빠졌다. 변방 놀이패가 주류 정치를 넘본 데는 애초 탐욕과 위선이 어울렸다고 본다. 거기에는 방송과 사회에 범람하는 천박한 예능과 '구라'를 즐겨 띄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나꼼수를 '철학'차원으로 치켜 올린 학자는 말할 것도 없다.

나꼼수가 조롱한 것은 MB 정권을 넘어 우리 정치와 사회 모두일 수 있다. 사회와 정치 주류가 위선과 꼼수를 벗어나 정직한 논쟁과 승부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 사악한 광대가 다시 세상을 넘볼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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