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20대 여성 살인 사건으로 치안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진 가운데, 인천에서 새벽에 딸의 방을 침입한 괴한을 250여m나 뒤쫓던 아버지가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대전에서는 대낮에 자녀와 함께 있던 주부를 납치하려던 남성을 60대 시민이 붙잡아 경찰에 넘겼다. 반면 경찰에 대한 불신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14일 오전 3시50분쯤 인천 남구 도화동 모 아파트 1층에서 부인과 함께 안방에서 잠을 자던 이모(43ㆍ국립습지센터 연구사)씨는 딸(18)의 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듣고 본능적으로 뛰쳐나갔다. 장갑 낀 손으로 딸의 입을 틀어막고 있던 신원미상의 남자는 이씨를 보고 문 밖으로 달아났다. 이씨는 잠옷만 입은 채 맨발로 괴한을 뒤쫓았다. 현관문 유리가 깨지며 팔에 상처가 났지만 계속 달렸다. 놀란 부인은 남편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자 112에 신고했다.
10여분 후 이씨는 250m쯤을 달려가 한 남자를 붙잡았다. 두 사람은 몸싸움을 벌였고, 이 남자가 휘두른 주먹에 이씨는 얼굴을 맞았다. 이씨는 그 자리에서 쓰려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이후 4시9분쯤 근처에 있던 시민이 경찰에 신고했고, 8분 후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다. 이씨는 호흡과 맥박이 없는 상태였다. 119구급대는 심폐소생술을 하며 이씨를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이씨는 숨을 거뒀다.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구급대가 도착해 이씨를 병원으로 옮길 때까지 경찰은 현장에 없었다.
경찰은 이날 오전 3시59분쯤 부인의 112 신고를 받고 이씨 집으로 출동했지만 정작 이씨의 사망 사실을 파악한 것은 4시30분쯤 "사망자가 실려왔다"는 병원의 신고를 받고서였다. 인천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신고를 받고 피해자 집으로 출동해 주변을 수색했지만 그쪽에서 벌어지는 일까지는 몰랐다"며 "최선을 다했지만 안타깝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 부인의 지갑이 없어진 점으로 미뤄 집에 침입한 남자를 절도범으로 보고 추적 중이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이씨와 몸싸움을 벌인 남자는 절도범과 동일 인물이 아닌 것으로 파악, 이 남자의 행방도 쫓고 있다. 경찰은 이씨의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할 예정이다.
숨진 이씨는 경희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국내 철새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졌다. 2001년 국립환경과학원에 들어가 연구사로 지난해까지 근무했고, 조류인플루엔자 연구팀에서도 활약했다. 지난해 9월 환경부로 파견돼 지난 1월 31일 국립습지센터 발족과 함께 이곳에서 근무해 왔다.
한편 최근 부녀자 납치사건이 3건이나 발생해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는 대전에서는 대낮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여성을 납치하려 한 20대 남자를 60대 시민이 붙잡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전둔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후 4시25분께 김모(37)씨가 대전 서구 한 대형마트 주차장에서 쇼핑을 마치고 자녀와 함께 승용차를 타려던 주부 A(32)씨의 승용차 뒷좌석에 침입해 흉기로 위협했다. A씨가 비명을 지르자 달아나던 김씨는 현장에 있던 시민 B(62)씨와 주차요원에게 붙잡혀 경찰에 넘겨졌다. 범인을 붙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B씨는 자신이 한 일을 경찰에 알리지 않고 자리를 떴다.
B씨는 "주차된 승용차에서 비명소리가 잇달아 들려 가까이 가보니 한 여자가 뛰쳐나오고 뒤이어 남자가 급하게 차 문을 열고 나와 큰일이 벌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도망가는 남자의 점퍼와 혁대를 잡아챈 뒤 뒤이어 달려 온 주차요원과 합세해 제압했다"고 말했다. B씨는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왔을 것"이라며 "시민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범인 김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여관을 전전하다 밀린 여관비 50여만원을 독촉 받자 이날 오전 11시부터 노끈을 소지하고 마트 주차장을 배회하며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대전=이준호기자 junhol@hk.co.kr
인천=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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