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매달 갚아 나가야 하는 주택담보대출의 이자율은 물론 큰 마음 먹고 구입한 물건의 할부금도 한국은행이 매달 발표하는 정책금리의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직접 대출을 해준 해당 금융기관이 대출금리를 정한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정하는 대출금리 역시 한국은행의 정책금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렇듯 명백히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통화정책을 누가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지난주 금요일에는 총선, 북한 로켓발사 등 굵직굵직한 뉴스 속에서도 한국은행과 관련된 두 개의 뉴스가 각 언론에서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하나는 10개월 연속 정책기준금리가 동결됐다는 소식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2년 간 공석이었거나 이번 달에 임기가 만료되는 금융통화위원 4명의 인선에 관한 소식이었다. 물가 상승압력과 대내외적인 불안 요인이 공존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이번 달에도 금리를 동결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는 한국은행의 설명이 있었고, 임기가 만료된 자리는 채우는 것이 마땅한 터라 두 뉴스가 딱히 관심을 끌 일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한 2010년 초부터 통화정책의 방향 및 시기 선택을 두고 한국은행 안팎에서 많은 이견이 제기되어 왔음을 감안한다면, 이 두 소식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볼 여지가 생긴다. 참고로 김 총재가 총재직에 오른 2010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과정에서 소위 출구전략의 중요한 축으로 금리정상화가 본격 논의되던 시기이다.
물론 한국은행은 김 총재 취임 이후 5차례 금리를 인상하며 출구전략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행의 출구전략은 실기하였을 뿐 아니라 금리 인상폭 또한 충분치 않은 바, 지난 10개월 간의 금리동결은 이와 같은 문제점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지적이 여러 곳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를 근거로 김 총재가 강조하는 '거시적 안목'이 한국은행 본연의 목적인 물가안정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통화정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그 결정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 속에서 금융통화위원회가 공석 중인 금통위원 한 자리를 거의 2년 동안 비워놓고 운영되어 왔다는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 백 명도 아니고 단 일곱 명이 모여서 통화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자리인데도 말이다. 더욱이 여기에 이번 달에 임기가 끝나는 세 자리를 합하여, 전체 위원의 과반인 네 명의 신임 금융위원에 대한 추천이 지난 금요일에 있었다는 것은 금융통화위원회 고유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도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와 같은 일련의 상황 전개 하에서 한국은행이 펼치는 통화정책에 대한 신뢰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위상 제고가 절실하다. 당장은 위원들의 임기 만료 시점을 분산하거나 인사 청문회를 도입하는 등 제도적, 기술적인 보완책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연직 위원인 총재를 포함한 금융통화위원 개개인의 전문성이 제고되는 방향으로 인사 선정기준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요컨대 금융통화위원회는 학계와 관계를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통화 및 금융 전문가 조직이라는 인식을 대중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독립성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중심으로 한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운용함에 있어 전문성을 인정 받고, 이에 근거해 예측 가능한 통화정책을 실행함으로써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통화위원회에는 통화정책 전문가만 없다"던 항간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실없는 농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허석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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