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든 은하든 간에 먼 곳에 어떤 천체가 있는데 하필이면 그 천체와 우리 사이에서 시야를 가로 막으면서 또 다른 천체가 떡 하니 놓여 있다고 생각해보자. 아쉽지만 우리는 더 멀리 있는 천체를 절대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 천체에서 오는 빛을 우리와 그 천체의 중간에 놓인 천체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 세계에서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의하면 어떤 물체가 존재하면 그 물체의 주변 시공간이 바로 그 물체의 질량의 크기에 따라서 휘어지게 된다. 질량이 클수록 더 많이 휘어진다. 우주 시공간 속 물체와 시공간 자체가 전혀 별개의 대상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시공간은 물체를 내포하고 물체는 시공간을 정의한다.
오리온자리의 별들과 우리 사이에 태양이 놓여있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선 태양의 질량 때문에 주변 공간이 휘어질 것이다. 오리온자리의 별들로부터 오는 별빛은 시공간이 휘어져있건 말건 원래대로 움직일 것이다. 그런데 별빛이 이동하는 시공간이 휘어있으니 휘어있는 모양새를 따라서 움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보기에 오리온자리의 별빛은 태양이 없을 때와는 다른 위치에서 관측될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편평한 면과 휘어진 면을 굴러가는 구슬들은 각기 다른 경로를 따라서 굴러가서 각기 다른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이유는 단지 굴러가야만 하는 면의 곡률이 달랐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중력렌즈효과라고 한다. 마치 중간의 천체가 마치 렌즈처럼 작동해서 뒤편의 천체 모습을 굴절시키고 증폭시켜서 (결국 왜곡시켜서) 보여주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천문학자 에딩턴은 바로 이런 점에 착안했다. 6개월 후 일식이 일어날 위치에서 태양이 없는 상태의 밤하늘 별들의 상대적인 위치를 측정했다. 그리고는 6개월 후 일식이 일어나면서 낮하늘에 별들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 6개월 전에 관측한 바로 그 위치에서 사진을 찍고 다시 별들의 위치를 측정했다. 별들의 위치는 아인슈타인이 예측한대로 변해 있었다. 물론 태양 때문에 주변 시공간이 휘어졌기 때문이었다. 1919년 일반상대성이론이 관측으로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찍은 은하단의 사진에는 그 은하단 너머 더 멀리 숨어있던 은하단의 은하들이 앞쪽 은하단의 엄청난 질량이 만들어 놓은 큰 시공간의 곡률 덕분에 왜곡된 아크 모양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 보다는 작은 별 단위의 미시중력렌즈 효과를 응용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외계행성도 찾아내고 있다. 모두 중력렌즈효과의 결과물들이다.
빨갱이들과 목사 아들 사칭하는 놈 찍으면 미군 철수하고 북한이 쳐들어오기 때문에 한나라당 (여전히 그렇게 부르셨다) 찍었다는 장인어른과 윗동서 말에 가슴이 답답했다. 총선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또 분단과 교회인가 싶어 자괴감마저 들었다. 한편으론 분단과 교회가 우리 사회라는 시공간을 엄청나게 휘어지게 만든 정치렌즈 역할을 한 덕분에 그 뒤에 숨어서 결코 드러날 것 같지 않던 민심과 문제점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서 표출된 게 고맙기도 했다. 분단과 교회가 우리 사회를 왜곡시키는 은하단 같은 정치렌즈라는 사실도 좀 더 명확해졌다.
정작 중요한 것은 태양계 밖 외계행성들의 존재처럼 별 주위를 허우적거리면서 말없이 돌고 있던 민생에 지친 작은 존재들의 분노와 체념의 목소리를 '강원도의 새누리당 몰표'라는 미세정치렌즈를 통해서 적나라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정치렌즈는 우리를 좌절시켰지만 그 너머에 숨은 민심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제는 그 너머 실체를 바라보는 긴 시선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다. 왜곡 뒤에 숨은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이제 다시 시작이다.'그러니 신동엽의 시처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이명현 SETI코리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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