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즈의 대모 박성연(66)씨를 돕기 위해 후배 뮤지션들이 발벗고 나섰다. 박씨가 운영하는 국내 최초의 재즈 클럽 야누스가 극심한 경영난에 처하자 유명 재즈 아티스트들이 힘을 모아 헌정 공연을 열기로 했다. 5월 6일 서울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리는 공연의 제목은 '땡큐, 박성연'. 말로 이부영 여진 써니킴 혜원 허소영 등 여가수들과 재즈 트리오 그린티,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이 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을 처음 제안한 말로(40)와 박씨를 12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야누스에서 만났다.
"야누스는 제 분신과도 같은 곳이지요. 하지만 30년을 해도 늘지 않는 게 비즈니스더군요."(박성연) "야누스는 국내 재즈 클럽 중에서도 가장 '음악적'인 곳이에요. 음악이 중심이 되는 유일한 재즈 클럽이라고 할 수 있죠."(말로)
재즈 클럽 하나가 무슨 대수냐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야누스는 국내 재즈 뮤지션들에겐 그저 평범한 재즈 클럽이 아니다. 1978년 11월 23일 신촌 기차역 인근에 문을 연 야누스는 한국 재즈 1세대의 요람이었고 이후 세대들에게도 고향이나 다름 없는 곳이다. 신촌에서 혜화동, 청담동, 그리고 현재의 서초동으로 옮겨오는 동안 강대관, 정성조, 신관웅, 이정식, 임인건, 배장은, 웅산 등 한국 재즈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이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다른 재즈 클럽들이 재즈의 멋과 낭만을 팔며 승승장구할 때 박씨는 적자에 짓눌리면서도 정통 재즈만을 고집했다. 최근엔 눈물을 머금고 30년간 소중히 간직해온 LP 1,000여장을 내다 팔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박씨의 건강도 악화했다.
이 소식을 듣고 후배 말로가 먼저 움직였다.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엔 음반을 파는 바자를 열까, 했죠. 그러다 (그룹 윈터플레이의) 혜원씨가 선생님과 야누스에서 듀엣으로 노래한다는 말을 듣고 아예 크게 벌리자고 했어요. 선생님께 은덕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고 하니 다들 흔쾌히 승낙하더군요."
박씨는 후배 뮤지션들과 종종 한 무대에 섰지만, 듀엣으로 노래한 적은 없다. "후배들에게 밀리기 때문에 같이 부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문을 연 그는 "사실 재즈에서는 화음을 맞추면 재미가 없어 듀엣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했다. 재즈와 국악의 접목이 종종 부조화에 그치는 걸 보며 '잘 어울리지 못한다면 의미 없는 시도'라고 생각했다고. 그랬던 그가 이번 공연에선 후배들과 빚어낼 화음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했다.
"어떤 남자가 나를 30년간 행복하게 해주겠냐"며 재즈에 대한 예찬을 아끼지 않는 박씨는 인터뷰 도중 밴드와 함께 자신의 애창곡인 'I'm a Fool to Want You'를 불렀다. 재즈를 실컷 노래하고 싶어서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누스를 열었던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재즈와 함께 평생을 살아왔다. "뮤지션들이 공연할 때 떠드는 손님을 쫓아내기까지 했어요. 그러다 이 모양 이 꼴이 됐죠." 박씨가 옛 일을 회상하며 웃자, 말로가 말을 거들었다. "선생님은 자기 뜻을 굽히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끝까지 가는 지사 같은 분이에요. 지금은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요."
박씨는 이번 공연에서 후배들이 각기 고른 8곡을 듀엣으로 함께 부르고, 'I'm a Fool to Want You'와 'My Way' 등 3곡의 애창곡은 혼자 소화할 예정이다. 그의 대표곡 '물안개'는 후배들이 존경의 뜻을 담아 헌정한다. 말로는 박씨와 함께 부를 곡으로 아르헨티나의 반독재 투쟁의 선봉에 서서 민중을 위해 노래했던 메르세데스 소사의 'Gracias A La Vida'를 골랐다. 칠레의 민중가수 비올레타 파라가 쓴 이 곡은 이렇게 끝맺는다. '슬픔과 행복은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그것입니다. 내게 그토록 많은 것을 준 삶에 감사합니다.' 공연문의 (02)3143-5480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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