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뭐든 자기가 잘했다는 것이다. 심하게 말하면 없는 일도 만들어서 자기가 했다고 하고, 죄를 짓고도 국민을 위해 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의원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이런 풍토 속에서 스스로를 낮추고 양보하고 책임을 떠안는 정치인을 보면 참 신선하다. 민주통합당 박선숙 의원이 그렇다. 4ㆍ11 총선 패배가 확실해지자 곧바로 사무총장직을 사퇴한 것도 달리 보였지만, 야권연대 협상 때의 처신은 더욱 그랬다.
■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 연대 협상이 한창이던 3월 초, 실무협상 대표인 그와 통화한 적이 있다. "협상이 성공하면 당에서 전략지역이나 비례대표를 주겠구먼"이라는 통상적 질문에 "안 한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논문 표절을 해도, 막말을 해도, 성추행을 해도 사퇴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서 차지하려는 국회의원을 안 한다니! 그는 "연대가 성사되면 많은 민주당 동지들이 지역구를 넘겨줘야 하는데, 그 칼질을 한 장본인이 어찌 출마하느냐"고 했다.
■ "겉은 버드나무처럼 부드럽지만 속에는 철심이 들어 있다"는 평이 생각났다. 1995년 박 의원이 국민회의 부대변인이던 시절, 한 중진이 가냘픈 외모를 보고 "너무 여리여리해서 걱정"이라고 하자 김대중 총재가 한 얘기다. 그 말 그대로 박 의원은 이후 첫 여성 청와대 대변인, 환경부 차관, 국회의원으로 다부지게 일하면서도 과하지도, 독하지도 않은 언행을 보였다. 속은 나뭇가지이면서 말은 철심처럼 독하기 이를 데 없는 요즘 세태에선 드문 처신이다.
■ 박 의원은 이번 주부터 의원회관에 나가겠다고 한다. 남은 임기 동안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란다. 선거 실무를 총괄 지휘한 데다 패배까지 했으니 진이 다 빠졌을 법한데, 휴식이나 여행 대신 출근하겠다고 하니 여간 독한 게 아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는 "의원직도, 당직도 없지만 대선 때 할 일이 있다면 온몸을 던져 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면서 당 내부를 향해 뼈있는 말을 던진다. "눈앞의 이익에 어두워 국민을 보지 않는 정파주의자가 많다"고.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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