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도 아닌데 꽃을 받았다. 함께 책 작업을 하고 있는 한 잡지사의 기자가 저녁 약속에 조금 늦는다 싶더니만 내미는 게 꽃이지 뭔가. 묘하게도 그 가짓수가 하나일 때 더한 애착을 갖게 되는 게 있는데 이를테면 꽃 한 송이가 그런 듯싶다. 꽃 앞에서 와, 어머, 하고 벌어지는 내 입이 절로 꽃봉오리를 닮아버리니 말이다.
문단 어르신 몇 분이 술자리를 갖고 계신다는 전화에 먹는 둥 마는 둥 밥숟가락을 놓고 술집으로 향했다. 꽃다운 젊은이들 제 스스로 꽃인 줄도 모르고 피어 넘치는 홍대 밤거리를 꽃 든 손으로 걸었다. 스무 살 땐 왜 모를까,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 무릎 나온 청바지가 가장 그 나이답게 예쁘다는 걸.
시꺼먼 아이라인이 언더라인까지 죄 번진 줄도 모르고 횡단보도 앞에 토해대는 여자애와 그녀의 가방을 목에 걸고 그녀의 등을 토닥토닥 쳐주는 남자애가 있었다. 신호가 몇 번이나 바뀌는데도 건너지 않은 채 그들 커플에게 입 헹굴 물과 입 닦을 휴지라도 사다 줄 오지랖의 요량이었던 데는, 나도 한 시절 저리 지내왔음을 기억하는 까닭이었다.
아무 힘들 것 없어 보여도 세상 모든 게 다 고민이던 그때, 술자리에서 진탕 먹고 진탕 울고 나면 마음가짐이 새롭게 다잡아지기도 하던 그때, 그 시절로부터 4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민중가요와 전태일을 얘기하며 우는 선생님들을 만났다. 지지 않는 꽃은 역시 사람뿐이구나.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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