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조재우의 공감]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조재우의 공감]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

입력
2012.04.13 17:42
0 0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의 최대 관심사는 우리 사회에 가장 적합한 '한국형 은퇴모델'을 발굴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실정에 맞는 은퇴모델이 없기 때문에 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은퇴 이후의 행복은 돈도 중요하지만 가족, 취미ㆍ 여가, 건강, 사회활동 등의 포트폴리오를 복합적으로 잘 형성해야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또 은퇴 이후의 인생은 부모, 아내와 자식이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이기적이고 불량하게 살 것을 주문했다. 베이비부머들은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들에게 노후를 기댈 수 없는 첫 번째 샌드위치 세대다. 이들은 은퇴하면 '탈북자'가 된다. 부인과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친구도 없고, 외로움만 타기 때문이란다.

그는'노후자금으로 10억원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겁박하는 금융기관의 공포마케팅에 대해서도 극히 비판적이다. 돈만 있으면 노후가 행복할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은퇴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은퇴연구소까지 만들었을까. 일각에서는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자금을 겨냥한 삼성생명의 전략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은퇴라는 말을 은퇴시키기 위해 연구소를 만들었다'는 우 소장을 만났다.

-은퇴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우리는 원래 은퇴나 노후를 걱정하지 않던 사회였다. 농경사회니깐 자식들에게 부양 받으면서 텃밭 메다 돌아가면 됐다. 또 가족 내에 모든 안전장치가 있었다. 부모가 걱정할 것은 자식을 잘 키우는 것이었다. 그러면 노후, 간병 등이 다 해결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산업화 사회가 되고 가족이 해체되면서 안전판이 다 없어진다. 은퇴라는 용어는 산업화의 산물이다. 50~60대는 샌드위치 세대다. 자식에 올인 하면서 부모를 모시고 있다. 하지만 자식들은 여력이 없다. 부모를 모신 마지막 세대로 자식들에게 노후를 기대될 수 없는 첫 번째 세대다.

-부모를 모시면서 은퇴했는데 자식도 취직을 못해 3세대가 노는 경우도 있다.

선진사회로 들어간 대가가 고령화다. 지금 수명은 남성은 80세, 여성은 85세를 돌파하고 있다. 이게 2년 전 통계니 앞으로 매년 4개월 이상 수명이 늘어난다. 우리나라 여성은 세계에서 6번째로 오래 산다. 60년대 생의 설계는 남성은 90세, 여성은 95세로 해야 한다. 생존기간을 짧게 잡으면 나중에 골치 아프다. 플래닝 에이지(Planning Age)라고 한다. 기대 수명과는 다르다. 미국의 경우도 90세와 95세를 잡고 있다. 고객들이 깜짝 놀란다.'내가 그렇게 오래 살 것 같으냐'는 것이다. 통상 5~8세 정도 자기 수명을 짧게 잡는다. 오래 살면 뭐하냐는 식이다.

-실버타운은 어떤가.

실버타운, 정원생활 하겠다는 분들이 많지만 장단점을 알아야 한다. 실버타운이라는 게 미국에서는 1990년도까지 유행했다. 시설에 노인들을 모시자는 것인데 별로 행복하지 않다는 게 증명됐다. 요즘은 유럽이나 미국 같은 경우'내가 살던 곳에서 격리되지 않고 살자'(Aging In Place)라는 식으로 개념이 바뀌었다. 젊은이들과 소통하면서 도와주고 멘토 하면서 같이 엉켜서 살아가는 참여형 모델이 유행한다. 노인들이 스스로 커뮤니티에서 격리하는 것은 생각이 부족한 탓이다.

-은퇴 콘서트도 열었다.

은퇴관련 강연을 너무 딱딱하고 겁을 주는 방식으로 진행해왔다. 돈 없으면 은퇴 이후 인생이 끝장이 나는 걸로 공포감을 조성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돈이 있든 없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 권리와 방법이 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조사는 충분히 나오고 있다. 노후자금 계산 좀 하지 말자. 없는 돈 계산 하면 나오겠나. 사회는 개그맨이 보고 음악 공연도 한다. 방송 MC보는 변호사 분들이 나와 자기 인생 얘기도 한다. 합창도 한다.

-일종의 노인콘서트인가.

젊은이들은 물론 중, 장년층들이 주로 온다. 노인이란 말을 안 쓰기를 바란다. 너무 부정적이다. 우리는 시니어(senior)로 쓴다. 은퇴라는 말도 그렇다. 은퇴는 영어로 retire로 타이어를 갈아 낀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은퇴라고 하면 노는 걸로 생각하는데 타이어를 갈아 끼고 앞으로 30년 인생을 다시 달려야 하는 것이다. 노인콘서트가 아니라 새출발 콘서트다. 콘서트의 부제목이 '營탔?인생을 디자인 하세요'다. 라이프 디자인, 생애설계라는 컨셉이다.

-근데 왜 은퇴연구소인가.

은퇴라는 말을 은퇴시키기 위해 만든 연구소다. 은퇴라는 말 쓰지 말자. 우리에겐 은퇴란 없다. 영원한 삶이 있을 뿐이다. 새출발 때는 남편, 아내, 자식을 위한 인생이 아니라 굉장히 이기적으로 불량하게 나이가 들기를 바란다. 자기의 최고 철학을, 자기가 태어난 목적, 어릴 때 꿈을 구현할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은퇴 후 돈도 중요하다.

'노후자금 10억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하는 금융기관들은 문제가 있다. 공포마케팅이다. 겁을 줘서 빨리 가입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돈 있으면 인생은 행복한가. '빨리 준비하세요'가 '돈 있으면 행복하다'는 거다. 그것은 진정한 질문에 답을 못해준다. 금융기관 중심으로 노후설계가 진행되는 것은 영업의 도구에 불과하다.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모형을 제시하지 못한다.

-기대수명이 높은 것이 사회적 재앙 아닌가.

절대 재앙이 아니다. 축복으로 받아 들어야 한다. 생각을 많이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는 너무 젊음을 좋아하는 국가다. 소녀시대나 K팝이나 예쁘고 화려하고 잘 다이어트 된 젊은이들을 내세운다. 나이 들면 냄새 나고 지루하고 부정적인 이미지다. 쓸모가 없고 판단력이 떨어지고 범죄의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을 바꿔야 한다. 성공적인 노화(successful aging)가 필요하다. 요즘은 참여형 노화, 창조적 노화 얘기도 나온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시대의 걸작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육체적 힘이 떨어지지만 정신적인 영감은 더 높아지고 행복도는 더 높아진다. 행복도는 U자 커브를 그린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30대가 가장 낮고, 50, 60, 70대는 행복도가 더 높아진다. 우리는 반대다. 노인 자살률이 세계 1위다. 병에 걸리고 외로우면 자살해버린다.

-시니어 잡(senior job)이 필요하다.

외국은 시니어 잡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노인들의 아날로그적인 경험이 필요한 자리로 젊은이들은 덤벼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구두 뒤축을 가는 일도 된다. 젊은이들이 들어올 일이 없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각 분야에서 정하고 있다. 시니어 일자리 중에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유적 해설가. 고궁 해설가. 관광가이드, 다문화 가정 멘토 등이다. 6개월에서 2년 정도 가벼운 교육을 받은 후 자기의 취미와 맞물려서 반쯤 일하고 반쯤 은퇴하는 semi-retire 방식이 좋다. 풀타임으로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일할 필요는 없다. 느리게 사는 게 특징이다. 행복하고 존재가치를 느낄만한 일들은 우리 사회가 많이 창출할 수 있다.

-일자리를 둘러싸고 세대갈등이 일어나지 않나.

유럽 등지에서는 노인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오히려 경제가 더 활발해지면서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동시에 창출이 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마트에서 카트를 나르는 것 등 노인 일자리를 규정해주면 젊은이들은 좀더 힘을 쓰는 곳으로 가게된다. 간병분야를 보라. 고령화 사회는 돌연사가 적다. 병상에 오래 있는다.요양사를 노인들이 하면 된다. 젊은 노인이 더 나이든 노인을 돌보는 거다. 베이비부머가 712만명이고 이후 1964~1974년생까지 후기 베이비부머가 900만명이다. 무려 1,600만명이 지금부터 20년 동안 은퇴를 해야 하는 범위로 들어온다. 요양원을 짓고 시설을 만드는 산업이 열리면 젊은이들 일자리가 창출된다. 요양사도 많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젊은이와 노인 일자리가 서로 경합하는 것이 아니다.

-행복 포트폴리오가 뭔가.

재산을 비롯해 가족, 취미ㆍ 여가, 건강, 사회활동 등 5가지를 설정해봤다. 그것을 골고루 가지고 있어야지 재산과 건강만 챙겨도 안된다. 여자는 올레 길에서, 남자는 등산으로 몸만 만들면 공포스러운 사회가 된다. 영혼을 자극하는 취미, 여가도 필요하다. 내 일생의 꿈이 의사였다고 치자. 은퇴 한 뒤 의사를 하려면 다시 수능을 봐야 하기 때문에 포기한다. 일본 등 고령화 국가의 경우 재력과 능력과 비전있는 시니어들이 대학 신입생이 되면서 대학 사회를 재건했다. 우리 대학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공부해서 세브란스 병원에 취직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 진료를 한다든지, 요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장벽이 시니어들을 등산으로 내몬다.

-은퇴 이후에는 외로움과 건강이 더 문제 같다.

한국형 은퇴모형의 핵심에는 네트워크, 사회와의 교류가 중요하다. 우리 주거 수단은 아파트다. 옆집과 대화를 하지 않는다. 자식들과도 단절되어 있다. 자식들과는 주로 성적만으로 대화한다. 그나마 자식이 결혼하면 의무감에서 왔다갔다 한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적당히 쿨하게 살게 된다. 베이비부머의 특징이 회사형 인간이다. 자기 네트워크는 동창밖에 없다. 은퇴하면 지역사회에 커뮤니티가 없다. 대화하고 봉사하고 어울리고 교류하는 것이 너무 약하다.

-네트워크 모델이 있나.

NORC(Naturally Occuring Retirement Community)라는 것이 있다. '자연 발생적 은퇴 공동체'쯤 된다. 미국은 더 이상 실버타운 같은 시설을 만들지 않는다. 어떤 지역에 노인들이 15%가 산다고 하자. 그러면 정부가 실버타운으로 선언을 한 뒤 민간비영리단체(NPO)를 투입한다. NPO에 재정보조를 하고 실버타운의 역할을 하도록 한다. NPO가 노인들에게 전화하고, 네트워킹을 해주고, 차량을 마련해 놀러도 가고 교육도 시킨다. 핫라인도 개설한다. 비영리적인 모습이지만 재정 자립도가 높아지면 정부가 재정지원을 끊는다. 미국의 50개 주에 거의 다 있다. 또 그런 커뮤니티가 만들어지면 휠체어를 타고 살 수 있도록 주거를 고쳐주고 홈헬스케어시스템을 깔아서 병원과 지역사회를 연결한다.

-굉장히 구체적이다.

그런 체계적인 모형을 찾고 있다. 어떻게 도입할지 고민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아버지가 재산을 아들한테 주고 부양을 받는 경우도 있더라. 대신 계약서를 쓴다.'내가 재산을 다 주니깐 너는 월 150만원에 간병까지 해라'는 식이다. 그런데 자식이 실직을 하거나 사업 실패를 할 수도 있어 불안하니 종교단체에 맡길 때도 있다. 우리는 전국 100개의 실버타운이 지금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재정이 불안해지면서 보증금을 유용을 하거나 적자가 일어나서 파산한다. 실버타운은 세계적인 추세에서 벗어난 모형이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젊은이들과 교류하면서 독립적으로 최대한 자존심 있게 살아가야 한다.

-전원생활이나 낙향은 어떤가.

베이비부머들은 고향에 대한 추억이 있다. 그러나 낙향하려면 몇 가지 고려를 해야 한다. 생활비는 절감된다. 수명도 약간 는다. 대신 네트워크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남자는 회사형 인간이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면 네트워크, 친구가 없다. 남자는 은퇴해서 집에 있으면 '탈북자'가 된다. 부인과 대화하는 법도 모르고, 친구도 없고 외로워 하고, 잔소리만 하기 때문이다. 고향이나 전원생활도 60~70대까지는 괜찮다. 그러나 누군가 아픈'간병기'가 오면 골치 아프다. 택시 타고 병원에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만성질환의 경우 더 힘들다. 그리고 부부 중 한명이 사망하면 정말 힘들다.

-한국형 은퇴모델은 어떤 건가.

우리 사회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토론회 장을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우리가 모델자체를 만들 수는 없다. 불을 지피고 논의를 하고 토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단, 우리가 외국의 좋은 모형들을 가져다가 연구를 해서 제시하겠다.

-은퇴후에 잘 살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있나.

아까 말한 행복포트폴리오를 골고루 갖추고 한 두 분야에서 자기 영혼을 담을 수 있는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다. 취미ㆍ여가를 너무 캐쥬얼하게 하면 안된다. 등산, 골프, 세계여행, 동호회 활동 등. 이런 것은 너무 가볍다. 자기 영혼을 담지 못한다. 악기를 연주하고 친구들과 악단을 만들어서 요양원을 다니면서 우울증에 걸린 노인들을 치료하는 방식은 좋다. 은퇴자들은 TV를 하루 5시간이상 보거나 하루 종일 등산한다. TV를 꺼야 하고 등산을 줄여야 한다. 은퇴하면 1년 안에 성급하게 뭔가 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일을 저지른다. 오히려 푹 쉬면서 자아를 봐야 한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왜 태어났고 내가 죽을 때, 뭐가 가장 행복했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아성취를 하기 위해 은퇴플랜을 세워야 한다. 1년 동안 자신에 대해 파고들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교육을 받아야 한다. 헬스클럽 다니고, 골프치고, 세계여행 다니고, 친구들 쫓아다니는 건 최악이다. 1~2년간 공부를 해야 한다. 타이어를 갈아 끼려면 교육이 필요하다. 반드시 교육기관으로 가야 한다.

● 우재룡은 누구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한투자신탁 경제연구소, 한국펀드평가 창업, 동양증권 자산관리연구소장 등을 거쳐 2010년부터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 <행복한 은퇴설계> <당당한 노후> <은퇴설계 무조건 따라하기> 등이 있다.

조재우 선임기자 josus62@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