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수도 프놈펜 인근 캔달 지역 벙 마을의 가옥들은 대부분 2층 구조다. 매년 5~10월 우기(雨期)마다 집중되는 호우 탓에 집이 잠기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건기는 반대다. 비가 오지 않아 먹을 물마저 부족하다. 주 식수원이 빗물인 탓이다. 그나마 두 달은 우기 때 항아리에 받아둔 빗물을 마실 수 있지만 나머지 넉 달은 연못 물로 버텨야 한다.
문제는 고인 물의 경우 오염되기 십상이란 점이다. 지난 1월 박순호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이사가 캄보디아로 날아간 건 이를 해결해주기 위해서다. 일단 그는 전력 시설이 미비한 현지 사정에 맞춰 사람이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의 수동 정수 장치를 만들어줬다. 그러나 노력에 비해 생산되는 식수가 너무 적었다. 양을 늘려야겠단 생각에 프놈펜 시내를 뒤져 태양전지판을 겨우 구했다. 이를 이용, 태양광 발전기를 추가 설치해줄 수 있었다.
국경 없는 과학기술자회가 13일 서울대 교수회관에서 연 '과학기술 해외봉사 보고대회'에서 소개된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의 모범 사례 중 하나다. 적정기술은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상대적으로 간단한 기술을 활용, 그 지역의 자연 조건과 사회 제도에 적합하고 지역민들에게 절실한 제품을 제작해 공급해주는 기술을 뜻한다.
적정기술은 재해 지역에도 필요하다. 박 이사는 지난해 말 태풍 '와시'가 휩쓸고 간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카가얀 데 오르 시로부터 긴급 구호 요청을 받고 지난 3월 이 지역을 찾았다. 이재민 캠프 한 곳에선 색깔이 누렇고 악취가 나는 물을 그대로 마시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하루 150명 분량의 식수가 생산되는 정수 장치를 급히 제작해 선물했다. 박 이사는 "적정기술은 현지에 가장 적합하고 검증된 기술이어야 한다"며 "기술을 한 번 적용한 뒤 내버려두지 않고 지속적으로 개선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기술뿐 아니라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구경완씨는 지난 2월 초 필리핀 파야타스 지역을 방문, 주민들에게 현지에서 자라는 님(Neeme) 나무와 대나무를 이용, '캐어 스틱(care stick)'이란 일종의 칫솔을 만들어주고 왔다. 구씨는 "적정기술에 그들의 환경, 문화적 특성을 반영한 디자인을 입혀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영제 국경없는 과학기술자회 회장(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교수)은 "세계 인구의 40% 인 25억명이 현대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며 "소외된 이들에게 쓸모 있는 과학기술을 보급하고 가르치는 것이 과학기술자의 존재 의미"라고 말했다.
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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