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데도 경찰은 너무나 태연합니다."
수원에서 우웬춘(42)씨에게 납치, 살해당한 A(28)씨의 마지막 목소리를 담은 녹음 파일이 13일 유족들에게 최초로 공개됐다.
A씨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경찰 112신고센터를 향해 보낸 절규를 직접 들은 유족들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남동생은 녹음 파일을 듣다 112신고센터 벽을 주먹으로 내려치기도 했다. 차마 딸의 비명을 들을 수 없었던 A씨의 부모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녹취 내용을 들은 후 이날 오후 6시20분 경기지방경찰청 치안상황실 문을 열고 나오던 A씨의 언니와 남동생, 이모 한모씨와 이모부 박모씨 등은 침통한 표정에 눈가가 젖어 있었다. 사건 발생 후 언론 노출을 피했던 유족들은 "그냥 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자들 앞에 섰다.
유족들의 분노는 A씨의 애타는 호소에도, 태연하고 일상적인 어투로 응대한 112신고센터 근무자들을 향했다. 이모 한씨는 "다급하게 비명을 지르는 목소리가 절박한데 근무자들은 일상적으로 전화를 받듯이 무성의하게 '주소가 어디냐'고만 물었다"며 "그 와중에도 느긋하게 '부부싸움인데''라고 한 경찰도 우씨같은 살인범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모부 박씨는 "이어폰 음량이 큰데다 감정이 격앙돼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조카는 간절하게 구조를 바랐다"며 "상식적으로 이 정도라면 부부싸움일지라도 바로 출동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녹음 파일을 두 차례 청취한 한씨는 우씨로 추정되는 남성의 목소리도 들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앞서 공개한 7분 36초 분량의 112 신고전화 녹취록에는 우씨의 목소리가 전혀 없어 일부러 삭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한씨는 "미세하지만 조선족 말투로 '안되겠네'라는 말을 들었다"며 "신고전화를 받은 112 근무자 20명 중 단 1명이라도 급박한 상황으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한씨의 주장에 대해 경기경찰청 관계자는 "우리도 여러 번 들었지만 남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한편 사건 당시 경기경찰청 112신고센터 근무자가 A씨의 신고 전화를 일방적으로 먼저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찰청은 경기경찰청 112신고센터에 보관돼 있는 A씨의 신고전화 녹음 파일을 분석한 결과 112 직원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끊어버려야 되겠다"는 말이 녹음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이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A씨의 신고 전화를 112 직원이 먼저 끊어버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찰청은 이날 수사국 지능수사팀 7명을 경기경찰청으로 급파해 신고전화에 담긴 남성의 목소리를 1차 파악했지만 이 말은 "끊어버렸다. 안되겠다 이거"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신고전화를 누가 먼저 끊었는지 여부도 7분 36초의 전체 통화 중 7분 34초에 휴대폰이 끊기는 듯한 기계음이 '띵' 하고 들렸고 이후 112신고센터 전화가 끊어졌다고 경찰은 밝혔다.
그러나 경찰은 제기된 의혹에 대한 정확한 사실 규명을 위해 관련 자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분석을 의뢰했다. 경찰은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해당 112 직원을 파악한 뒤 직무유기 등 혐의를 적용해 형사처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수원=김기중기자 k2j@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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