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4월 발발한 보스니아 내전이 20주년을 맞았다. 95년 말까지 이어진 전쟁에서 공식 집계된 사망자만 10만명에 달한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 이후 최악의 ‘인종청소’가 자행된 까닭이다.
총성은 멈췄지만 남은 자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이 평화협정을 중재했지만 이 과정에서 자국민 입장이 무시돼 민족 간의 불안한 동거는 진행형이다.
보스니아 내전은 2차 대전 후 핏줄과 종교가 서로 다른 민족들이 뭉쳐 만든 연방국가 유고슬라비아가 90년대 공산주의 몰락과 함께 각 나라로 다시 해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연방의 주도권을 쥐던 세르비아만이 연방분리를 반대하는 상황에서 마케도니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보스니아)가 차례로 분리독립하며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독립할 여력이 없던 몬테네그로와 코소보 등은 세르비아에 속했다.
마케도니아는 91년 유고연방에서 평화적으로 독립했고, 슬로베니아도 같은 해 열흘간의 내전 끝에 세르비아계 주민들을 몰아내고 독립에 성공했다.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계인 크로아티아는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의 반대로 연방에서 독립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와 7개월간 전쟁에서 1만여명이 사망하는 등의 희생을 감수한 뒤 독립을 쟁취했다.
문제는 보스니아였다. 세르비아는 마지막으로 독립에 나선 보스니아에 더 이상의 독립 불가를 외치며 배수진을 쳤다. 소수 세르비아계 주민을 빼면 단일종족으로 구성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와 달리 독립투쟁 당시 이슬람계(40%)와 세르비아계(40%), 크로아티아계(20%)가 섞여있던 복잡한 내부상황도 독립에 걸림돌이었다.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인은 합심해 92년 3월 국민투표에서 독립을 확정했다. 그러나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세르비아계 주민들은 유고연방에게서 우수한 무기를 공급받아 인종청소를 시작했다. 보스니아 내전의 시작이었다.
95년 7월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50㎞ 떨어진 스레브레니차에서는 역사상 최악의 참극이 발생했다. 세르비아군과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불과 며칠 만에 4만여명 이슬람계 중 전투할 수 있는 10~50대 남성 8,000여명을 학살했다. 2차 대전 후 처음 열린 전범재판에서 집단학살죄가 적용됐을 만큼 잔인한 도륙이었다.
같은 해 12월 데이튼 협정으로 3년 8개월간의 보스니아 내전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배제된 채 미국과 EU 주도의 협정으로 태어난 보스니아는 겉모습만 연방일 뿐 사실상 분단국가와 같은 기형적 모습을 띠었다. 보스니아는 협정에 따라 이슬람계와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이 모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연방과 세르비아계 주민들이 세운 스르프스카 공화국으로 나뉘었다. 대통령은 각 세력 별로 한 명씩 뽑아 총 3명이 8개월마다 돌아가며 4년 임기를 채우고 있다. 이렇다 보니 각 세력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집권할 때마다 정부의 정책 자체가 흔들린다.
로이터 통신은 “전체 인구가 350만명인 나라에 총리는 13명, 장관만 130명에 달한다”며 “체제를 유지하는 비용만 국내총생산(GDP)의 30% 이상”이라고 전했다.
내전 발발 당시 BBC 방송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제레미 보웬은 내전 발발 20주년을 맞아 다시 보스니아를 찾은 자리에서 “사라예보에는 아직도 건물 곳곳에 총탄과 포탄 흔적이 남아 있다”며 “내전에서 시간이 멈춘 채 발전이 없는 것은 데이튼 협정이 연방의 결속력을 묶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보스니아 주민들은 미국과 EU가 주도한 내전 종식은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인 세르비아계가 전체 국토의 절반을 차지하는 현실에 가장 많은 불만을 갖고 있다. 하리스 실라지치 보스니아 전 대통령 겸 이슬람 지도자는 CNN 방송에서 “이슬람계 수난의 상징인 스레브레니차가 여전히 세르비아계 점령하에 있어 마음대로 찾아갈 수도 없다”며 “인종청소 사망자가 적어도 50만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몬테네그로가 2006년 투표를 통해 평화적으로 세르비아로부터 독립한 것은 발전적인 일”이라며 “세르비아 내 코소보 자치구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발칸반도는 또 다시 유럽의 화약고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태무기자 abcdef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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