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1 총선은 이명박 정부의 실정에서 시작됐다가 박근혜 새누리당의 성공으로 마무리된 셈이다. 그 사이에 손학규 야권통합에서 이정희ㆍ김용민 야권분열의 테마가 들어앉아 있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등 표를 받아 든 입장에서 돌아 본 판단은 별다른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쪽에서, 국민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상황은 좀 다르다. 총선결과 분석 중 하나가 '승패를 좌우한 5%의 투표율'이라고 하는데 유권자 입장에서 그것을 살펴볼 여지가 많다.
서울 한복판, 어느 가장 A씨의 경우가 흥미롭다. 그 집엔 7장의 투표용지가 나왔다. 50대인 A씨 부부 2명, 80대 어머니, 미혼인 40대 전문직 여동생, 30세 전후의 딸자식 신혼부부(맞벌이) 2명, 지난해 투표권을 획득한 대학생 막내 1명이 유권자였다. 하지만 A씨와 여동생, 두 명만이 투표소에 다녀왔다. 지난해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에는 해외에 있던 막내를 제외하고 6명이 모두 나가 각자 소신에 맞춰 투표를 했었다.
투표소가 집에서 불과 200㎙ 정도 떨어져 있었고, 그것도 정식 공휴일로 지정돼 있었는데 80대 어머니도, 30세 전후의 신혼부부도, A씨보다 더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부인도 투표를 하지 않았다. A씨가 몇 차례 "가자"고 권유했으나 어머니와 부인은 "생각 없다"며 시큰둥했고, 딸자식 부부는 "이쪽은 이래서 싫고 저쪽은 저래서 안 되겠다"며 망설이더니 결국 오후 6시를 넘겨버렸다. 막내는 그날 국내에 없었다. 80대부터 20대까지 비교적 골고루 투표권을 갖고 있었던 그 가족의 투표율은 29%였던 셈이다.
나이든 어르신과 중년 아줌마, 30세 전후의 맞벌이 부부에게 공휴일 가까운 투표소에조차 나가고 싶은 마음을 심어주지 못한 선거였다. 이런저런 상황을 따져 '중산층 혹은 중간층'이 분명한 A씨 가족의 경우를 살펴보면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좋으냐 싫으냐 하는 문제로 간추려진 모습이다. 민주당이 독립변수였고 새누리당은 종속변수였다는 얘기다. 민주당 혼자서 유권자를 향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한 셈이었다. 박근혜 대세론을 MB정권 심판론으로 희석시킨 것도 민주당이었지만, 그 심판론을 국민의 관심에서 뒷전으로 물러나게 한 쪽도 민주당이었다는 얘기다.
A씨 가족인 80대 어르신, 50대 아줌마, 20~30대 부부의 판단은 선거일에도 불구하고 정지돼 있었다. 그것은 전국적으로 판단을 유보한 '5%'로 확인되고 있다. 이번 총선 투표율은 54.3%였다. 야권의 치어리더들은 '70%가 넘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며 지지투표를 호소하면서도 전망했던 투표율은 '60% 전후'였고 여권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론조사도 그랬지만 현실은 달랐다. 문제의 '5%'가 어느 편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개인적 선입견이 굳어져 있지 않은, 정치적인 판단으로 선호를 따지는 유권자가 대다수라는 점은 뚜렷하다.
당선된 의석 수를 두고 절묘한 황금분할이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한 껍질 벗기고 보면 한 달 정도 이어진 여야 정당의 행태에 대한 여론조사로 봐도 될 대목이 많으며, '무응답 계층'이 많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총선 개표가 끝나기도 전에 민주당이 내부분열을 일으키기 시작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반면 의석 수에서 예상 밖의 우위를 차지한 새누리당이 승리를 거듭 확인하면서 새삼 불안해 하는 모습은 이해할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152 대 127이라는 여야 양당의 당선자 숫자는 물론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의미는 보수와 진보가 뚜렷이 갈라진 상황에서 양쪽 진영에 대한 지지(비례대표 득표율)가 46.0% 대 46.8%로 우열이 없다는 사실이다. A씨 집안에서 "생각 없다"는 어르신도, "이도 저도 싫다"는 젊은 부부도 연말 대선에선 예전처럼 투표장에 나갈 것이며, 새삼 그런 마음을 갖게 될 시간과 상황은 충분하다. '5%'를 향한 여야 정치권의 고민과 경쟁이 시작됐다.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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