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대선, 올림픽, 엑스포…
이런 굵직굵직한 사회 현안들이 집중돼 있는데 사랑 어쩌구 하는 건 너무 한가하게 들릴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거대담론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랑 때문에 인생이 휘청인다. 나폴레옹도 연애편지를 썼다. 하지만 사랑이 어디 아름답기만하랴. 치사하고 유치하고 배반과 실망과 후회가 바늘에 실처럼 따라붙는다. 요즘이야 그렇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약자였던 여성에게 사랑은 생명줄이자 족쇄였다. 그런 여성의 아픔을 참으로 잘 표현하는 가수가 김수희다. '사랑과 전쟁'의 가요판이라고나할까?
'나도 너처럼 괴로울 때 있어도 운명이라 생각하며 약속을 지켰다.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은 두고 떠나라.'<자존심은 두고 떠나라>자존심은>
'한잔술에 기대고 싶은 그런 밤이 찾아오면 이름없는 낯선거리로 사랑을 찾아 갑니다. 사랑도 팔고 사는 속이고 속는 세상, 오로지 믿고 의지한…''-<서울여자>서울여자>
김수희가 쓰는 가사는 이렇게 책임감 없는 남자로 인해 상처받은 여성들에게 절대 공감을 준다.
김수희는 18세 때, 당시로는 드물게 여성밴드로 데뷔했고 영화감독도 했고 소설가이기도하다. 거의 모든 자신의 노래 가사를 썼고 작곡도 한다. 재능이 놀랍다. 나에게 김수희는'멍에'부터 다가왔다. 1982년 프로야구가 시작돼 박철순이라는 불세출의 스타와 김수희의'멍에'가 동시에 여심을 뒤흔들었다. 거리에서도, 라디오에서도, 서울 종로에 몰려있던 디스코텍의 블루스 타임 때도 어김없이 '멍에'는 흘러나왔다. '멍에'를 들으면 괜히 슬펐다. 특히 중간에 '그래도 내게는 소중했던….'부분에서 김수희가 서럽게 꺾어부르는 특유의 창법을 따라부르며 새롭게 성인가요의 매력을 알아갔다. 물론 김수희 하면 '애모'다. 애모 뿐 아니라 김수희 노래를 듣다보면 뭔가 비밀스런 사랑, 어두운 사랑이 느껴진다. 사랑이 잘난 사람, 멋진 사람, 똑똑한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김수희가 부르는 사랑 노래가 평균적인 우리에게 더 와닿는지도 모른다. 나는 '너무합니다','서울여자','고독한 여자', '정거장', '남행열차'등등 김수희의 모든 노래를 다 좋아했는데, 또다른 의미에서 김수희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 그 인연은 2002년, 생활이 어려운 노부부들의 결혼식을 올려주는 '황혼의 웨딩드레스'라는 프로그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웨딩 콘서트의 초대가수였던 김수희는 출연자들의 슬픈 사연에 감동 받아 축가를 부르다가 펑펑 울어버렸다. 그녀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고 나는 관례를 깨고 그 NG장면을 그대로 살려서 방송을 내보냈다. 나중에 그 프로그램으로 여러 상을 받았는데 뒤에 들려온 이야기가, 심사위원들이 그녀가 울 때 같이 울먹였다고 한다.그야말로 김수희의 진정성 있는 눈물 때문에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어디 억지로 만들어지겠는가. 실제로 그녀는 정이 많고 주변을 잘 챙기는 여걸이다. 그렇게 살아왔기에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그런 리얼한 가사가 나왔을 것이다. 김수희가 쓴 가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광야'다.
'화려한 포장에 내모습 가리워져 가난한 이름만 남았어도 다시 일어나서
미소짓는 이유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의 사랑이 밝아지고 있어서 반갑다.
조휴정ㆍKBS해피FM106.1 '즐거운 저녁길 이택림입니다'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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