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13일 국제사회와 주변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 통상 4번째 장거리 미사일 실험이다. 국제법도 무시하고 한반도와 세계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비정상적 태도에 기가 막히고 저들과 한민족이라는 우리가 부끄럽다.
어찌된 영문인지 최고 통치자 김일성 부자가 죽었으니 그 사회가 무너질 법도 한데 전혀 안 그런 이유가 있다.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조손대대 이어지는 지독한 그 정권의 존재 이유가 바로 주민들 배급제에 있다.
북한의 배급제는 1946년에 시작해 59년부터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이때 또 다른 사회풍조가 생겼는데 그것은 주민들의 이동을 정부가 허가하는 '통행증 제도'와 '거주지 승인'이다. 국가에서 배급을 주기 때문에 자유이동 및 거주 등은 불필요하다는 명목이며 꼼짝달싹 말고 한 곳에서 주는 것만 먹고 살라는 논리이다.
필자가 태어나 29년간 평양에서 살면서 5세까지는 300g, 고등학생까지는 500g, 직장인이 되어서는 700g의 식량을 배급받았다. 아버지는 정년퇴직해서부터 300g을 받았다. 비율은 백미 70% 옥수수 30%이다. 성인인 내가 받을 식량은 21kg인데 인민군원호미, 애국미, 충성미 등 각종 공제미를 제하면 14kg이었다. 그러니 다른 대체식품 없이 하루 450g의 식량은 그야말로 코끼리 비스켓이다.
이렇게 1995년 4월까지 공급받았고 그 이후로는 한 달에 10kg 혹은 5kg 받기도 하고 몇 달간은 전혀 못 받는 등 들쑥날쑥이었다. 부식물은 명절에 한 가구 당 콩나물 500g, 돼지고기 1kg, 식용유 0.5리터, 두부 2모, 배추 1통 정도가 고작이다. 평일은 아무것도 없고 뭐든 각 가정과 개인이 알아서 해결했다.
필자가 살았던 중구역 외성동 아파트는 하루 2시간씩 찬물이 나왔다. 연료는 4인 가족 기준으로 석유 10리터 공급받았는데 이것도 김일성 사망 후 중단됐다. 부친이 살았던 신축 3년째인 통일거리 20층 아파트도 이때부터 승강기가 멈춰 걸어 다녔다.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인 평양이 이렇다. 그러니 평양에 비해 10% 수준밖에 안 되는 지방의 생활은 상상이 갈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주민의 20%가 배급을 받고 50%는 불법시장에서, 나머지 30%는 농사와 구걸로 연명하는 북한이다.
국가에서 배급을 못주면 주민들이 자생하라고 장사라도 공식 허용해야 하는데 '장사는 자본주의 산물'이라며 기필코 불허한다. 정부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 한 순간의 공백도 없이 주민들을 각종 정치학습 및 행사로 내모는 당국이다. 체제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먹고 살겠다는 주민들의 생존권마저 묵시한다.
이렇게 한심한 정권이 미사일을 쏘았으니 기가 막히다. 발사장 건설, 발사체 및 위성개발 등에 약 8억 5,000만달러의 거금이 든 것으로 추산된다.그 돈으로 식량을 구입한다면 대략 중국산 옥수수 500만 톤으로 2,000만 만주민 1년분 배급을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다.
미사일을 쐈다고 주민들의 굶주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마저 굶기는 사회주의 농법과 멈춰버린 산업경제로 인해 그들의 배고픔은 지금도 계속되는데 오로지 정권유지에만 몰두하는 북한당국이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하루 한 끼 멀건 죽으로 끼니를 떼우는 비참한 모습을 외면하고, 배고파 뛰쳐나오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는데,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한사코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 북한당국은 제정신이 아니다.
림일 탈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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