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리라 믿고 살았다. 그리고 기다리던 봄이 돌아왔다고 믿었다.
그런데 아직도 거리엔 칼 바람 휘몰아치고 밤새 내린 서리가 수북하다. 사람들은 다 허물어진 집에 웅크린 채, 지독한 감기몸살에 끊이지 않는 기침을 해 대고 충혈된 눈으로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지만 밖은 아직도 캄캄할 뿐이다.
지난 몇 년, 궂은 날 개인 날 가리지 않고 나무와 돌을 주워 열심히 지붕과 담벼락을 고치고 이었지만 집은 좀 채 완성되지 않고, 그 때마다 지옥 같은 폭우와 강풍에 집은 쑥대밭이 되고 집터는 매번 흔적조차 없다. 번번히 모든 수고가 물거품이 되었고 가슴을 후벼 파는 좌절의 칼 바람은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텃밭에 심어놓은 소박한 먹거리들은 죄다 처참하게 뽑히고 쓰러져 어지럽게 뒹군다. 초가삼간 움막 하나 지어놓고, 그 담장아래 따스한 봄 햇살 쪼이며 살아가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 이라니.
이 강산의 이 지독한 비바람과 어둠에 번번히 무릎 꿇는 무력함에 어이없어 말 문이 막히고 망연자실 눈물이 흐를 뿐이다. 이 땅에 봄은 정녕 사라진 것일까.
불현듯, 100년 전 이역만리를 헤메이며 조선의 봄을 되찾으려 애쓰신 선조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무너진 조선을 다시 세우려 네델란드 헤이그로 건너간 이준, 이위종, 이상설 열사님들. 일제의 방해와 서구 제국들의 방관으로 가슴에 품은 고종의 친서를 꺼내 읽지도 못하고 만국평화회의장 문 밖으로 끌려나가신 그분들의 찢어지는 절규와 외침이 다시 들려온다. 외교권도 없는 힘없는 나라의 밀사들이 흘리는 피눈물이 오늘 내 눈 앞에 또다시 떠오른다. 눈 조차 감지 못하고 객지에서 순국하신 그 어른이 보인다. 그분들의 처량한 모습이 광화문 도로 앞에 스쳐 지나간다.
1919년 경성역 광장에서 일제 총독에게 폭탄을 투척한 강우규의사의 모습도 떠오른다.
조선의 봄은 결코 누가 던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자신의 집은 다른 누구도 대신 지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노구의 나이에 폭탄을 선택한 강철같은 어르신. 그 어르신이 서울역 동상에서 뛰쳐나와 광화문 광장으로 걸어가신다.
또 떠오르는 분이 있다. 평범하고 가난한 노동자 이봉창의사. 먹고 살기 위해, 생계를 찾아 배를 타고 일본을 찾아간 어르신. 노동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평범한 그분이 일제의 왕을 향해 던진 수류탄과 분노의 함성이 들려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미소 지으며 김구선생, 윤봉길선생과 손을 잡고 광화문으로 걸어 오신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 우리가 곁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 많냐고. 다시 시작하자고, 다시 집을 짓자고. 칼 바람 눈 보라 닥쳐오면 어깨동무 힘을 합쳐 막아내자고.
우리들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 지금 여기 너희들과 함께 있는 이웃이라고.
"터는 저기 그대로 있다"
그래 정신을 다시 잡자. 봄을 찾아오자. 그렇게 숭고한 죽음들이 묻혀있는 이 땅의 소중함을 가슴으로 안다면 굴하지 말자. 억압받고 눌린 사람들의 원통함을 품고 웅크리지 말고 몸을 일으켜야 한다. 그것이 선조들이 물려주신 조선사람의 강인한 정신력 아닌가.
가슴 깊이 타오르는 불꽃은 독립운동으로, 조선의 해방으로, 민주화 운동으로, 많은 이들의 희생을 거쳐 끊임없이 우리 사회에 흘러 들어오고 있다. 그 불꽃은 비극 속에서 더욱 맹렬하게 타오른다. 사람의 의지와 희망을 이어주는 길, 우리네 선조들이 걸어온 길과 만나게 된다. 잡초처럼 다시 일어나고 다시 피어나는 불굴의 역사는 진실의 편에 서게 되어있다.
집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해도 포기하지 말자. 터는 그대로 있다. 여기에 무너진 파편을 모아 다시 쌓고 고쳐서 더욱 살기 좋은 보금자리를 만들면 된다.
무딘 연장을 갈고 다시 이 집을 고쳐 나가자. 지붕도 수리하고 화단도 가꾸고 주춧돌도 확인하자. 간밤 폭우 속에 용케도 살아있는 무와 배추가 남아있는 한 우리 희망도 꺾이지 않는다.
박근형 연극연출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