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쉬!/토드 부크홀츠 지음ㆍ장석훈 옮김/청림출판 발행ㆍ364쪽ㆍ1만5000원
미국 하버드 법학대학원 학장이 신입생들에게 전통적으로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두 학생이 숲에서 멀찍이 곰을 만났다. 한 학생이 신발끈을 조여 매자 다른 학생은 곰보다 빨리 뛸 수 없을 거라고 체념한다. 그러자 신발을 만지던 학생 왈, "곰보다 빨리 달릴 필요 없어. 너보다 빨리 뛰면 되니까." 경쟁사회란 이렇게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게임임을 말하려는 우화다.
하지만 백악관 경제정책보좌관을 지낸 경제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 를 쓴 저자는 경쟁에 대한 이 같은 이야기가 진정한 경쟁시스템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진정한 경쟁체제는 이런 제로섬이 아니라 곰 대비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미리 경고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해야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죽은>
저자가 이 책을 쓴 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 일에서 도망쳐 안식을 얻으라는 사회 분위기가 점점 확산되는 데 대한 반감 때문이다. 그는 이제 경쟁 그만 하고 서로 돕고 어울려 살아가라는 것도 못마땅하게 여긴다.
공동체 이야기를 다룬 책에 거의 빠짐 없이 등장하는 로버트 퍼트남 하버드대 교수의 책 <나 홀로 볼링> 이 이 책에서도 인용된다. 하지만 저자는 공동체가 갈수록 희박해진다는 퍼트남 교수에 찬성하지 않는다. '우정과 이웃 간의 정이 흔들리게 된 탓을 소비주의에 두지 않'으며 '상품 중에는 공동체 정서를 북돋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도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예를 들어 지금 미국의 주택은 1970년대에 비해 50% 정도 커졌는데 침실은 그대로지만 부엌과 거실이 넓어져 거기서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웃과 어울린다고 설명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나라 덴마크는 국민들이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 인구증가율이 제자리걸음이고,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이 풍족한 프랑스 노인의 인지 능력은 미국보다 훨씬 떨어진다는 식이다. 나>
저자는 경쟁을 부정하고 소비나 탐욕을 죄악시하는 사람들을 '에덴주의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이 간과하는 네 가지를 지적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체제 가운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며 더 오래 지속되는 체제는 경쟁 체제이며, 설사 에덴이 존재한다 해도 그동안 진화한 인간은 그런 낙원에 더 이상 걸맞지 않기 때문에 결코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언가를 손에 쥐려는 인간의 탐욕은 천박한 물질주의 때문이라기보다는 일이 자신을 뿌듯하게 만들어주고 일의 성공이 보람을 안겨주며, 그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영속시킬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이런 경쟁이 없었다면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독자들은 지금 죽어 없어졌을 존재라는 것이다.
경쟁은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것이라는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연구결과와 사례를 인용하고 있는 저자는 '돈 한 푼 없는 것을 고결하게 볼' 것 없고 '경쟁을 없애는 일은 위험할 뿐만 아니라 역효과를 낸다'고 꼬집는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저자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어진다. 돈은 결코 중요하지 않다고, 경쟁은 절대 하지 말자고 주장하며 대중의 환호를 얻은 사람이 과연 있는가.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