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톤에 육박하는 뼈와 근육이 척추의 방향으로 가속을 더해 달린다. 양쪽에서 네 개씩, 도합 여덟 개의 발굽이 모래를 움켜 하늘에 뿌린다. 쿵… 쿵. 쿵, 쿵쿵쿵쿵, 쁘억! 시근벌떡 콧구멍으로 불김을 내뿜으며 소와 소가 맞부딪친다. 지상의 포유류가 보여줄 수 있는 아마도 가장 대담무쌍한 박진감. 두개골과 목뼈를 묶은 힘줄로 서로의 무게를 버텨내는 소의 입술이 푸르르 떨리고, 공성추의 장식물처럼 달린 두 개의 방울눈에 퍼런 인광이 번뜩인다. 관중석 칠십 먹은 노인의 울대에도 파란 핏줄이 솟는다.
소싸움. 소 한 마리가 가산의 반절 이상을 차지했던 시대에 소싸움은 모든 것을 건 호쾌한 승부였다. 개울가 능수버들에 기어 올라가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던 인기 스포츠이기도 했다. 마을의 자존심을 건 토너먼트였고 소 먹이는 머슴이 상전보다 우쭐해도 되는 잔치였다. 투전판이기도 했다. 그러나 농경사회가 해체되면서 소싸움이 시들해졌고 내연기관의 힘으로 땅을 갈면서부터 소들도 박력을 잃었다. 좋은 팔자 타고 나면 목장에서 풀 뜯고 아니면 축사에 갇혀서 묵묵히 사료를 씹어 소화시키는 것이 이제 소가 사는 일의 팔 할이다.
소싸움은, 소싸움꾼들은 그러나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청도 정읍 보은 진주 의령 김해 함안 등등 도시화의 바람을 덜 탄 오래된 고장에서, 아직 소싸움이 열리고 철 되면 제법 왁자한 잔치까지 열린다. 18~22일 소싸움축제가 열리는 경북 청도군에 다녀왔다.
"우짜겠능교. 이게 지(소) 직업이고 내 직업인데. 지하고 내하고 똑같이 한 길을 가는 건데…"
청도읍 원리의 외진 산비탈에 싸움소 다섯 마리를 키우는 안귀분(59)씨는 소싸움판에서 알려진 우주(牛主) 가운데 거의 유일한 여성이다. 백전노장 싸움소 안창이와 함께 십여 년 전국 소싸움판을 누벼 '안창이 엄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트럭 타이어를 매단 길마를 얹고 고삐를 끌며 소를 훈련시키는 모습은 흡사 백병전 부대의 대대장 같지만 본래 그의 직업은 미용사란다. 찾아간 날은 안씨도 안창이도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는데, 그는 "지캉 내캉 한 몸"이라며 소에게 구령을 붙였다.
"처음엔 안창이 아버지(안씨의 남편)가 데꼬 사움(싸움)판에 댕겼는데 맨날 지고 오는 기라. 그래 속이 터져가 마 내가 한다 안 캤능교. 나는 마 영혼으로 안창이캉 대화가 됨니다. '창아 찍어라, 찍어라' 카믄 야가 진짜로 알아 듣는다카이요. 야가 뿔치기 기술 하나는 진짜로 타고 났는기라요."
현재 전국의 우주는 150명 정도 된다. 이들이 약 500두(청도공영사업공사에 등록된 숫자는 420두)의 싸움소를 키운다. 토너먼트 형식으로 각지에서 치러지는 소싸움 대회에서 체급별 우승 상금은 500만원 정도. 적어도 8강 안에 들어야 20만~40만원 정도의 돈이나마 만질 수 있다. 8강에 든다고 해도 기름값 제하면 여관방 잡을 돈도 안 된다. 훈련 시킬 땅 사고 콩과 보리를 섞은 사료에다 한약, 멸치까지 구해다 먹이려면 빚을 지게 될 때도 있다. 그래도 이들은 소를 훈련시키고 싸움을 붙이는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
"우리 안창이 뿔치기 하는 거 한 번 보믄요, 마 십년 묵은 스트레스가 한꺼번에 날라갈 낍니다. 내는 뿔을 뾰족하게 깎지도 않습니더. 다른 소 다치믄 되나. 야는 머리가 좋으니께네, 뿔이 뭉툭해도 이길 수 있는 기라. 머리를 탁 집어 넣어가 위로 확 올리치뿔 때를 한 번 봐야 되는데…"
청도는 전국에서 소싸움이 가장 성한 곳이다. 우주 가운데 절반 정도가 청도에 살며 소를 키운다. 소싸움 경기장은 1만 2,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18일엔 소싸움을 주제로 만든 테마파크가 문을 연다. 매주 토ㆍ일요일엔 경마처럼 정식으로 운영되는 '겜블'을 즐길 수도 있다. 경마처럼 1인당 10만원까지 우권을 살 수 있다.
그런데 아쉬움이 없지는 않았다. 조선 민화에서 볼 수 있는 소싸움의 정취는 현재의 소싸움 문화와 분명 거리가 있어 보였다. 마을 공동체 중심 잔치였던 소싸움이 우주 중심의 경쟁 스포츠로 변했기 때문. 20년 가까이 싸움소를 그려온 청도 토박이 화가 손만식(48)씨의 그림과 얘기에서 옛 소싸움의 정경을 엿볼 수 있었다.
"소는 싸움소라 해도 본래 무척 순합니다. 근데 한 십 년 그리다 보니까 조금씩 달라지더라구요. 점점 거칠어지고, 인간과 친화적인 느낌이 옅어지고… 제 추측인데, 싸움을 잘하게 만들려고 고기를 먹이고 너무 심하게 운동을 시켜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소싸움은 원래 일소 중에 힘 좋은 놈을 골라서 하던 건데. 청도 소싸움에서 싸움이 아니라, 인간과 가축이 어울려 살던 시절을 보고 가셨으면 좋을 텐데…."
■ 청도 또다른 볼거리
청도는 서울에서 천리길(400㎞)이 넘는다. 소恝至?보러 찾아가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 그러나 청도 땅에 볼 거리가 소싸움뿐인 것은 아니다. 신라의 흔적부터 거대한 와인 터널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이 땅에 얽혀 있다. 4월 청도의 무논은 미나리로 푸르고 언덕배기는 복사꽃으로 온통 분홍빛이다.
●운문사 천오백년 묵은 고찰인데 지금은 비구니들을 위한 승가대학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3층 석탑, 처진 소나무 등 유물도 볼 거리지만 법문(法門)에 막 들어선 젊은 비구니들의 침묵이 자아내는 단아한 분위기가 진짜 매력. 새벽과 저녁의 청아한 예불소리는 이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웅장한 합창이다.
●석빙고와 청도읍성 화양읍내에서는 조선 석공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얼음을 보관하던 석빙고(보물 제323호)는 얼음이 녹은 물이 자연스레 개천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과학의 산물이다. 옆에 있는 청도읍성은 고려와 조선의 지방 관아와 민가 풍경을 짐작해볼 수 있는 곳이다.
●와인터널 일제가 1904년 개통한 철도터널을 청도 특산인 감으로 만든 와인의 저장고로 탈바꿈한 시설이다. 내부의 붉은 벽돌 천장, 자연석 벽면 등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나만의 와인병 만들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철가방극장 풍각면 성곡리에 세계에서 가장 큰 철가방이 있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지난해 5월 문을 연 코미디 전용극장으로, 무대 뒤는 뻥 뚫려 성곡댐의 모습이 배경이 된다. 개그맨 지망생들의 열정적인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유상호기자
■ 여행 단신
대명리조트 제주 녹차로드
대명리조트 제주가 이색(2色) 트레킹코스 체험과 녹차로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녹차로드는 리조트 인근에 위치한 다원 다희연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곳은 곶자왈 속에 있는 동굴 카페로 유명하다. 이색 트레킹은 5월까지 제주올레 6, 7, 19코스를 매주 2, 4주 토요일에 체험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참가비 각 어른 2만원, 어린이 1만 5,000원. 1588-4888.
도심에서 맛보는 벚꽃의 향취
도심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제13회 63벚꽃축제'가 이달 말까지 여의도 63빌딩에서 진행된다. 63씨월드의 마스코트인 펭귄과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펭귄 벚꽃마차 퍼레이드, 해발 264m인 60층 스카이아트에 만발한 '공중 벚꽃' 앞에서 소원을 비는 이벤트, 푸짐한 상품이 걸린 게릴라 퀴즈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는 페이스페인팅 등이 진행된다. (02)789-5663.
태국으로 떠나는 화려한 휴가
포시즌스호텔 태국이 여름 휴가철을 맞아 '서머 컴플리먼트 패키지'를 출시했다. 포시즌스의 텐티드 캠프에서 3박 이상 숙박할 경우 태국 내 원하는 포시즌스 호텔과 리조트(방콕, 치앙마이, 코사무이)에서 2박의 무료 숙박 혜택을 준다. 코끼리 트레킹 등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9월 30일까지. www.fourseasons.com
청도=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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