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농구 축구 등의 팀 스포츠에서 뛰어난 선수가 은퇴하면 공헌을 기려 그의 등 번호를 팀 내에서 영구히 사용하지 않는다. 이 같은 영구결번은 선수에겐 최고의 영예다. 가장 최근에는 5일 은퇴한 기아 타이거스 이종범 선수가 등 번호 7번을 영구결번으로 부여 받았다. 팀 내에서는 선동열 감독에 이어 두 번째. 지난해 암 투병 끝에 타계한 최동원 선수의 경우 소속팀이었던 롯데 자이언츠가 그의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올렸다.
■ 영구결번제는 원래 유명 선수가 은퇴한 뒤 유니폼 판매 수입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상술로 시작됐다고 한다. 상술로서의 첫 영구결번은 1935년 미식축구팀인 뉴욕 자이언츠의 레이 플래허티의 1번이다. 그런 영구결번이 지금의 의미로 자리잡은 것은 1940년 메이저리그 뉴욕 양키스의 스타 루 게릭의 등 번호 4번이 영구결번되면서부터다. 그 후 메이저 리그는 수많은 영구결번 전설을 낳았고,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에서도 영구결번 스타가 나오게 됐다.
■ 우리 프로야구의 첫 영구 결번은 1986년 성적 부진을 비관해 자살한 OB베어스(현 두산 베어스)의 고 김영신 선수다. 당시 OB베어스는 선수관리 책임을 통감하고 김영신의 비극을 잊지 않는다는 뜻에서 그의 등 번호 54번을 영구결번 처리했다. 본래 의미의 영구결번은 LG트윈스의 김용수 선수가 처음이며 이종범 선수를 포함해 모두 12명에 이른다. 일본에도 영구결번 선수들이 있지만 유명선수의 등 번호를 이어받은 세습제가 더 활발하다.
■ 좀 다른 얘기지만 북한에도 영구결번이 있다. 김일성 주석 사망 후 과도기를 거쳐 1998년 김정일 체제를 출범하면서 국가주석제를 폐지하고 그를'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했다. 그의 '불멸의 업적'을 기리고 유훈통치의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11일에는 지난해 말 숨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을'영원한 총비서'로 추대, 노동당 최고지위인 총비서를 영구결번 처리했다. 김정은은 '제1비서'로 추대됐다. 최고직위 영구결번이 권력세습 완성에 중요한 장치인 셈이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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