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1970년대였던 것 같다. 오래 전 신문에서 '서기 2,000년이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봤던 기억이 난다. 그 기사 속에서 예측됐던 미래 중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은 꼽아보면 하늘을 나는 자동차, 무선 전화기, 한끼 식사를 대용할 수 있는 알약 등이 있었던 것 같다.
당시 미래를 예측했던 전문가들이 지금 그 기사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르겠다. 예측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현재 실상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필자가 알기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나 한끼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알약은 이미 개발됐다.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경우 이번달 뉴욕에서 열린 뉴욕 모터쇼에서 공개되고 가격까지 발표됐다. 내년부터는 생산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자동차의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은 높지 않다. 반면, 무선 전화기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은 사실상 PC나 마찬가지인 스마트폰을 누구나 가지고 다니는 세상임을 감안하면 통신기술의 발달을 너무나 과소평가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하늘을 나는 자동차는 왜 개발이 늦어졌을까. 기술적으로 개발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왜 대량 보급에 대한 전망이 어두울까. 통신기술은 예측보다 훨씬 빠르게 발전했고, 자동차 산업 기술의 발달은 더뎠던 것일까. 물론 아닐 것이다. 자동차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인프라 차원이나 시스템 차원에서 선결과제가 많은 것도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개발할 필요성이 낮았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최근 미래 자동차에 대한 연구 방향을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최근 자동차 관련 신기술은 말 그대로 스스로(自) 움직이는(動) 차 개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폭스바겐에서는 자동으로 주차하는 기술, 그리고 충돌 위험성이 감지되면 속도를 줄이거나 멈추는 기술들은 이미 상용화 되었거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모든 상품이 단순히 생활에 필요한 도구로서의 역할만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음식이 단순히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다면 식사를 대신할 수 있는 알약은 이미 개발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음식은 단순히 한끼 식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수단으로서 가치가 더 크다. 정성껏 마련된 음식을 먹는 즐거움,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시간 등은 알약이 결코 대신할 수 없다.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다.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다. 자동차는 기계와 사람이 하나가 되는 일체감을 선사하는 몇 안되는 존재 중 하나다. 운전의 즐거움이 자동차의 가치를 논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친환경 열풍 속에서도 자동차 회사들이 다이내믹한 성능을 함께 갖춘 차를 개발하는데 집중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최근 쏟아지는 신상품들을 보면 무수한 첨단기술들이 적용된다. 하지만 신기술들이 해당 상품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드는 본질적인 기술인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히려 신기술로 인해 그 상품을 즐기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아닌지, 사용자를 편안하게 만들어야 할 첨단 장비의 사용법을 익히느라 더 불편해지는 것은 아닌지, 굳이 필요하지 않은 기능 때문에 제품의 가격이 더 올라가는 것은 아닌지라는 느낌을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된다.
자동차 역시 각종 첨단 기술들이 다양하게 장착되고 있다. 자동차가 기계가 아닌, 거대한 전자장비가 되었다는 평가는 더 이상 과장은 아니다. 새롭게 장착된 첨단 장비의 조작법이 너무 어렵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현재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선도하는 브랜드들이 방향을 제대로 잡고 본질을 중시하는 덕분에 각종 신기술 중 자동차의 본질을 해치는 기술이 아직까지는 많지 않다는 점이다.
더 잘 달리고, 더 안전하게 달리고, 더 운전을 편안하게 만드는 신기술은 언제든지 환영이다. 하지만 단순히 편리하다는 이유로,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신기술을 도입하는 것은 신중했으면 한다. 조금은 불편해도, 조금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본질을 즐기는 기쁨을 빼앗기고 싶지는 않다.
박동훈 폭스바겐코리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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