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 같은 소리가 구슬프게 퍼져 나가면 상쾌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해 능히 제천(諸天)을 기쁘게 할 만하다.'
신라 최고의 문장가 최치원은 범패를 이렇게 평했다. '인도(梵)의 소리(唄)'라는 뜻의 범패는 절에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노래다. 부처님 공덕 찬양이 주 내용이라 '음성 공양'이라고 하고, 중국 위나라 조자건이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만들었다 하여 어산(魚山)이라고도 부른다. 범패에 출중한 승을 어장(魚丈)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800년경 신라 때 중국에서 전래돼 꽃을 피웠던 우리나라 범패는 1911년 일제의 사찰령에 의해 금지된 뒤 겨우 명맥을 유지해왔다. 현재 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에는 홍원사 회주(會主ㆍ절의 최고 어른)인 원명(66) 스님이 유일한 어장이다.
그동안 조계종에서는 범패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2006년에 원명 스님을 어장으로 임명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던 조계종이 지난달 범패를 보다 체계적으로 전승하기 위해, 한국불교전통의례전승원을 설립하고 원명 스님을 초대 학장으로 임명했다.
영산재(중요 무형문화재 제50호) 전수조교이기도 한 원명 스님은 영산재와 수륙재, 예수재 등 각종 재를 3,000회 넘게 집전하며 40여년 동안 범패 보존과 계승에 힘써왔다. 1973년 불국사 복원 재를 비롯해 2006년 최규하 대통령 국장과 지난 1월 지관 전 조계종 총무원장의 영결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를 주관했다.
원명 스님이 처음부터 범패승이 되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17세에 출가해 선승이 되려고 철마다 선방(禪房)을 다녔어요. 1960년대 말 캄캄한 밤중에 혼자 도량에서 수행하다가 범패 소리를 들으며 황홀경에 빠져들었지요. 그 순간 염불이든 참선이든 범패든 극치에 들어가면 모두 다 한 길로 통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길로 원명 스님은 갑신정변의 주역인 박영효의 손자이자 당대 최고 어장이던 송암 스님을 찾아가 범패를 전수받았다. "범패를 배우겠다고 했을 때 노장(원로스님)들이 대처승이 되려느냐 무당 중이 되려느냐 하며 꾸중하셨어요. 당시에는 창피해서 감히 드러내 놓고 배우지도 못했지요."
범패는 듣기에는 좋지만 배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고 한다. "범패는 장단이 없는 짧은 소리이지만, 모든 번뇌가 사라진 선정(禪定ㆍ집중되고 맑은 마음상태)에서 소리를 해야 참 맛을 느낄 수 있어요. 저도 규모가 가장 큰 범패인 수륙제는 부단한 노력 끝에 4년 반 만에 겨우 익혔을 정도니까요. 예전에 소리하는 기생들이 범패를 배우러 왔다가 30분도 안 돼 포기하고 돌아갔어요."
스님은 범패가 푸대접 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우리나라 범패가 중국이나 일본 것보다 음악적으로 훨씬 더 뛰어납니다. 서양 사람들은 우리나라 범패를 가장 훌륭하다고 감탄하는데 정작 우리는 우리 것을 푸대접하고 있지요."
스님은 우리 범패를 널리 알리기 위한 첫걸음으로 한글화 작업을 시작했다. 여러 사찰에서 한글화에 손을 댔지만 오역이 많아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원명 스님은 "그동안 알음알음 찾아온 몇몇 스님에게만 범패를 가르쳐 왔는데 전승원에서 정식으로 후학을 양성하게 돼 기쁘다"고 했다. 벌써 20여명이 전승원에 등록해 범패를 배우고 있다. 전승원에서는 5년 동안 상주권공, 불교의식 장단, 불교무용, 수륙작법 등 재를 지내는 데 필요한 의식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계획이다. 과정을 모두 마치고 졸업하면 평가를 거쳐 원명 스님의 어산 법맥을 잇고 조계종 3급 승가고시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준다.
글ㆍ사진=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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