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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말이 칼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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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말이 칼보다 강하다

입력
2012.04.12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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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에 반전을 거듭했던 총선 드라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소중한 주권을 행사한 유권자들이야 개표 방송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겠지만 당사자인 후보들은 피 말리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불과 몇 백표 차이로 낙선한다면 다음 총선까지 4년을 절치부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4년 주기로 열리는 올림픽과 닮은 꼴이다. 하지만 올림픽에서는 은메달도 연금이나 박수 갈채를 받지만 선거에서 은메달은 필요 없다.

기자 개인적으로 정치인의 생명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래 전에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유명 정치인에게 큰 실망을 한 적도 있고, 터무니 없는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정치인은 아예 상종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관리 등용 시험을 치를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을 인물 평가기준으로 삼았는데 현대에도 정치인을 평가하는 데 많이 인용된다. 언(言), 즉 언변이 두 번째 항목으로 꼽히듯 말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당락을 불문하고 이번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언변적인 측면에서 따져보면 신뢰가 가지 않거나 흠집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번 선거 운동 기간 중 후반에 터져 나온 민주통합당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문만 봐도 그렇다. 몇 년 전에 여성이나 종교를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이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와 김용민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민심은 갈대와 같아 미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기 쉽다. 김용민 후보는 정권심판론을 앞세워 한 표를 호소했지만 결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번 유세 기간 중 말도 안되는, 진실성 없는 공약을 내세워 표심을 잃은 후보도 있다. 새누리당 허준영 후보는 '노원에서 KTX를 타고 부산, 광주에 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소 황당한 공약을 내세워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었다.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전국 246개 지역구에 나온 후보들의 공약을 들여다보면 실천 가능한 것은 절반도 되지 않을 것이다. 실현 가능성 여부를 떠나 당장 당선에 급급해 달콤한 말 잔치를 벌였기 때문이다.

용모, 말씨, 글씨, 판단력의 네 가지 인물 평가 기준이 꼭 관료나 정치인에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스포츠 선수에게도 해당된다.

상대 팀 선수를 자극하기 위해 내뱉는 설전을 장외 신경전이라고 한다. 최근 KGC 인삼공사의 우승으로 막을 내린 남자 프로농구 챔프전에서도 도를 넘어선 독설이 구설수에 올랐다. 인삼공사의 포워드 양희종은 챔프 2차전 승리 후 기자회견에서 수위 높은 독설로 상대팀을 자극했다. 2차전 경기 내내 강력한 밀착 수비로 윤호영을 7점으로 묶은 양희종은 "윤호영은 동부에 있기 때문에 윤호영이다. 다른 팀에서는 이 정도 활약을 하지 못할 것이다"고 운을 떼더니 그것도 모자라 마지막 3점 슛이 '에어볼'에 그친 이광재에게는 "마지막 슈팅이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렸다. 광재 때문에 이겼다"고 독설을 날렸다. 양희종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 팀 선수들을 자극해 자제심을 잃게 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승부를 떠나 페어플레이가 생명인 스포츠맨으로서 자질이 의심되는 발언이다.

이런 사례가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 유럽 프로축구 무대에서는 인종 차별적인 발언 등으로 물의를 빚는 사례가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맞붙은 2006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일어난 지네딘 지단의 박치기 파문이다. 이탈리아의 마르코 마테라치가 지단의 가족을 욕보이는 발언을 내뱉자 지단이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테라치의 가슴을 머리로 들이받아 퇴장 당한 사건이다.

정치인이나 유명 스포츠 스타의 말은 일반인보다 파급력이 훨씬 크다. 공인들은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한 마디 말이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힐 수도 있고, 상대방의 인생에 용기를 주거나 가르침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동은 스포츠부장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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