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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끔찍한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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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끔찍한 일들

입력
2012.04.11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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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아래는 4월 10일자 한 신문의 네이버 뉴스 헤드라인이다. 보는 순간 참담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정말 분개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 살해 사건, 살인마 오원춘의 집에서 나온 생리대는…'

최근 각종 언론을 보면 그 수위의 심각성에 대해 걱정이 된다. 아니 화가 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이 필요하다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그런데 공중파 뉴스도 다르지 않다. 요즘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들을 언론들이 다루는 방법은 너무나 선정적이다. 최근 벌어진, 그러니까 수원 토막살인 사건을 보면 모든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과연 이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벌거벗은 나체를 보고 싶은 하는 욕망과 잔혹하게 죽은 시체를 보고 싶어 하는 욕망들. 이 대표적인 두 가지의 욕망은, 인간의 탄생과 함께 쭉 인간과 같이 했다.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는 금기가 많던 중세에는 이 두 가지 욕망이 중세 회화(교리가 강한, 벌거벗은 채로 지옥에서 처참하게 응징 당하는)로써 충족되었다고 한다. 종교적 교리가 가지고 있는 근엄함과 죄라는 커다란 카테고리 안에서 교훈적인 목적으로 시작된 이 회화들은 후에 인간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서도 존재했다고 분석 되어 진다.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육체들을 지켜보면서 관람자들은 죄의 무거움이라는 교훈적인 영향과 함께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는 피에 대한 욕망을 충족했던 것이다. 기동성을 가진 사진(최초의 35mmm 포맷의 휴대용 카메라로서 단판 형식의 롤필름을 장착할 수 있게 개발돼 휴대성이 극대화됐다. 스페인 내전 당시 전장에 등장해 2차 세계대전에는 우리에게 엄청나게 큰 반향을 주는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의 등장으로 이 욕망은 사진으로 옮겨지게 된다. 사진은 현장성과 실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앞서 그림으로 자신에게 내재된 고통을 발견하는 관찰자(실재하는 고통에서 한 발 떨어져 있다고 느끼는 주체)보다 눈앞의 사진을 접하게 되는 대중에게 더한 충격을 주게 된다. 눈앞에 있는 이것이 실제로 존재했었던 일이라는 것,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쏟아져 나온 전쟁 사진들(피로 얼룩진)을 지켜보며, 대중은 지옥이라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현실성을 획득한 실체로 변한 것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언론은 그것을 악용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 이런 사진들은 움직이는 영상과 발달된 광학기술로 더욱 핍진하게 대중에게 다가서게 된다. 이는 발전의 한 방향으로서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앞에서 보이는 자극적 이미지에 현혹되어 실제로 벌어지는 이면을 일들이 묻혀지는 현상이 될 수도 있다. 이미지가 양치기가 되고 대중은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양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이것을 경계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이용당할 수 있는 많은 방법 중 하나다.

언론은 조선족 이주노동자가 20대 여성을 토막 살해한 사건을 거의 '중계'하고 있다. 그녀의 가족의 고통은 상관도 없다는 듯, 연일 자극적인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의 그녀의 시신이 몇 조각으로 토막 났는지도) 사건 수사과정에서 피해 여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녹취된 테이프가 공개되고, 용의자의 얼굴과 여성의 신원이 공개됐다. 사건은 정말 끔찍하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인터넷상에서 돌고 있는 범행현장 사진과 녹취 음성이다. 사건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단면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아래, 그녀와 그녀의 가족친지를 생각하지 않는 건가.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의 마지막 목소리가 얼마나 폭력적인지 정말 모르는 걸까. 우리가 그녀의 고통에, 그녀를 그렇게 만든 시스템에 분개하는 동안에도 살을 파고드는 통점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을 생각해야 한다.

정말, 잔혹하고 냉정한 것은 녹취록 안에 있는, 다급하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고인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다. 대중은 이 하나의 사건으로 단지 살인의 끔찍함을 느끼고, 경찰시스템에 대해 분노하고, 이주노동자 문제로 이 사건은 마무리가 될 것이다. 애석하게도, 그녀의 가족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천정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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